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지만 단번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겐 욕망과 충동이 잠들어 있지만 육체란 한계 덕분에 그럭저럭 얌전히 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몸을 잃은 귀신이라면 거리낄게 없겠죠. 재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살아있는 사람은 앞날을 생각해 자중하지만 귀신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 엉덩이를 걷어 차버릴 것입니다. 때문에 귀신은 비범하며 때로는 악독한 모습으로 그려지고는 합니다.
「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는 추리/스릴러 소설입니다. 소설은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던 웹툰작가가 사인회장에서 사라진 뒤 그 이유를 밝혀내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기 웹툰작가 장민세, 미래에서 타임리프 해온 여자 카르마. 두 인물은 웹툰의 표절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벌이며 사회적으로 주목받습니다. 탐정 전일도은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장민세와 카르마 사이 일어났던 일을 밝혀 사건을 해결하려 합니다.
소설은 분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타입의 추리소설이 아닙니다. 추리 소설이라면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강력계 범죄도 없고, 저래되 되나 싶을 정도로 수위 높은 입씨름도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잔잔하게 독자들을 빨아들입니다. 전반적으로 과장되거나 비약적 표현 없이 노골적인 시니컬함이 묻어나는 문체는 독자를 끈끈이처럼 붙잡습니다. 거기에 툭툭 던지듯 주고받은 대화가 소설에 보이지 않는 음표를 그리는 것처럼 리듬감마저 느껴지게 만듭니다. 솔직한 표현과 톡톡 튀는 리듬감. 지루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소설 속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소설 속 장민세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평범한 성인 남성이었습니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민감한 정신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만한 이야기를 그렸을 뿐이었죠. 소설에서는 장민세가 어디까지나 평범한, 비범하지 않은, 심지어 남들보다 조금 더 유치한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마치 사람의 본분을 잊으면 온우주가 나서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장민세는 웹툰의 인기가 곧 대중들이 장민세 본인에게 보내는 인기와 같다는 착각에 빠졌으니까요. 장민세는 웹툰이 사랑받듯 자기자신 역시 사랑받을 거라 확신하며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돼먹지 않은 착각 속에 끼워 맞춰 버립니다. 이를테면 ‘카르마’가 자신을 좋아할 거란 확신을 갖고 도둑키스를 했던 점에서 그렇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장민세의 행동을 ‘귀신이 들린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앞뒤 가릴 재량도 잃고 멋대로 군다는 것이지요. 교만은 인간을 홀리게 해 마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듭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7죄종이 설명하듯 죄는 죄를 낳습니다. 교만이란 죄는 장민세 안에 뿌리를 박고 자라 ‘카르마’ 성추행이라는 죄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필연적인 일처럼 느껴집니다.
때문에 닉네임 ‘카르마’는 윤회 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업보’가 되어 과거로 되돌아옵니다. 과거로 타임리프한 카르마가 장민세보다 한발 앞서 웹툰의 스토리를 블로그에 소설 형식으로 연재한 것이죠. 장민세의 웹툰은 표절논란에 휩싸이고 그는 스타덤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카르마는 이 모든 일들이 귀신의 도움으로 이뤄졌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랑을 하면 귀신이 질투한다고 말입니다.
소설의 결말 부분이 아쉬울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장민세는 분명 곤란한 상황에 놓였지만, 정황상 터진 일은 묻어버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갈 것만 같았거든요. 소설은 폭력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장민세를 괴롭히고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신 그저 시니컬한 목소리로 반성은 없고 해결되는 건 없다. 그저 이렇게 흘러갈 뿐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적이라 씁쓸했지만 이것 나름대로 좋은 결말이라 소설이 끝난 뒤에도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단편들 중 한편입니다. #전일도월드를 타면 상당히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전부 읽진 않았지만 「사람이 자랑하면 귀신이 질투한다」와 같은 분위기와 문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 마지막 페이지까지 만족스럽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