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언니’의 시점으로 썼습니다.
내가 왜 너를 만나기로 했는지 모르겠어.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나에게라도 대학 합격을 축하 받고, 취업준비의 외로움을 위로 받고 싶은 오래된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었을까?
어른들은 쉽게 “지나 봐라, 그래도 그 때가 좋은 거야”라고 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윤색되어서 그런 거고,어릴 때는 그 때 무게만큼 심각한 고민을 하지. 혼자서 ‘나도 학교에서 퀸카가 될 수 있어’라는 책을 읽는 너는, 아니 어린 나는, 그 때도 외로웠나 보다. 그런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달콤한 초코 쿠키를 주면서 응원해 주고 싶었어. 혼자가 아니라고.나한테 솔직하게 고민을 말해 달라고. 나한테도 친구가 있다고.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퀸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린 너는 이런 나를 상상하진 않았겠지. 친구 없이 혼자 책 읽으면서도 퀸카를 꿈꾸는 너였으니까. 너의 큰 꿈 속에서 어른이 된 나는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을 거야. 하지만 너는 자라서 이런 내가 된단다. 그냥 한 사람의 어른. 대학생이 되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는 평범한 어른. 열심히 노력하면 이런 어른이 된단다. 초코쿠키를 자기 돈으로 사서 어린이와 나눠 먹을 수 있는 어른. 그런데 있지, 이런 어른이 되는 것도 꽤 힘들고, 이런 어른으로 사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아. 그러니까 어린 너는 미래를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 즐겁게 행복하게, 아이답게, 너처럼 살면 된단다.
어린 너를 떠나면서 미안한 게 하나 있어. 초딩이던 네가 그랬지.종현이가 접은 색종이를 네게 던진다고. 그 때 내가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애한테 집적댄다고 했지. 지금 결혼을 앞두고 드는 생각인데, 그 때 나는 네게 ‘너는 사랑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를 존중해 줘야 한다’고 알려줬어야 했어. 좋아하는 여자애에게는 색종이를 접어서 던지면 안 된다고 종현이를 따끔하게 혼냈어야 했어. 너에게 색종이를 던지는 애한테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고 공감해 줬어야 했어. 그러면 지금 종현이보다 훨씬 괜찮은 남자를 만났겠지, 종현이는 나를 제대로 된 방식으로 사랑했겠지, 아니,종현이 없이도 훨씬 괜찮은 내가 되었겠지. 그러니까 너는 어린 너에게 나 같이 말하지 말아야 해.
너는 어린 나에게 더 좋은 언니가 되어 주렴. 이제는 정말로 안녕.
아, 맞다! 로또 번호 알려줄 걸! 그럼 네 인생, 아니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