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해요….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는 게, 그저 작품의 화자인 내가, 또 읽는 제가 착각했을 뿐이라는 게 이 충격을 어디 다른 곳에 책임 전가하고 탓할 수도 없어서 한동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와… 어떻게… 이런… 만 반복했습니다. 안 좋은 예언은 느끼지만 예언의 대상이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특별히 미래를 꿈으로 보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GL 태그도 있잖아요. 물론 모든 사랑 얘기가 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는 내내 고달프면 마지막 정도는 행복해도 괜찮지 않겠어요?! 실제 인생이 그렇지 않으니 허구로라도 그런 걸 바라는 거잖아요…. 물론 주인공은 어릴 때 ‘신이 보낸 귀한 아이’라고 들으며 커 와서 자기는 불행하지 않다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동생도 구하고 다른 아이들도 구하며 지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서 읽는 내내 꿈꿔온 종말의 날에는 주인공이 아파서 너만을 기다릴지언정 귀가한 너와 웃으며 대화하길 바랐어요. 안전한 곳에서요. 알콩달콩한 젊은 커플의 나이든 모습이라니 로맨스 작품의 완벽한 외전 소재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김칫국을 아주 김장독째로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씩씩한 주인공조차도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리고 그가 여태 해왔듯이 이 예언도 부수고 미래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을 때는 종말의 꿈을 꾼 20년 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이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정말로 신이 주인공을 보냈다면 바로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으리란 생각도 들었어요. 악랄하다, 악랄해…. 남의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며 깔깔거리는 건 인간뿐만이 아니었단 거겠죠.
그렇지만 이렇게 아파요, 괴로워요, 어떻게 이래요, 하소연해도 이 작품은 이 맛에 보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먹는 동안 눈물과 콧물과 땀이 줄줄 날 정도의 매운 음식이 화장실에서 앓고 난 다음에도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처럼요. 이런 작품은 반전이 있는 줄 모르고 봐야 더 재밌는데, 반전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걸 숨기고 알려 줄 수 없다는 게 늘 아쉽습니다. 알려 주는 시점에서 이미 있다고 밝히는 셈이 되니까요.
아, 이게 진짜 굉장한 작품인데 어떤 부분이 굉장한지는 드러낼 수가 없네요…. 리뷰에서도 스포일러를 가릴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아니면 제가 어딜 가서 이렇게 떠들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