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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C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선작21, 18년 10월, 조회 145

제목을 도발적으로 뽑아서 죄송합니다.

[심하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심하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사실 저는 아그책님 같은 작가의 글을 보면 우울해집니다. 왜냐고요? 왜냐면 제가 못하는 걸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전 이런 종류의 작가를 문장적 천재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미장센이나 문장의 스무스함이 아닙니다. 그냥, ‘문장’ 자체가 뭔가 질이 틀린 느낌입니다. 내 글은 합성 섬유로 만든 바람막이 같은데, 이런 작가들 글은 100% 천연 소재 비단 같다고 할까요. 부드럽고, 아름답고, 잘 밀려갑니다.

이러한 장점의 중간에 있는 건 보통 심리 묘사입니다. 아그책님 나이가 상당히 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참 소름끼칩니다. 이런 심리 묘사는 두렵습니다. 전 중반까지 실제 가해자가 쓴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서른 살에 중년 여인의 심리를 완벽하게 파악했다던 미시마 유키오의 일화가 생각날 지경입니다. 생동감 있는 묘사,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깬 것만 같다, 라는 이런 디테일한 묘사는 정말 선택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매우 좋았습니다. 초반에 나오는 일련의 시퀀스는 독자를 쉴 틈 없이 빠져들게 만듭니다.

정확히 “왜 나한테만 그래?” 까지만.

잠시 서예에 비유해보겠습니다. 한 젊은 서예가가 있습니다. 이 서예가는 글씨를 기가 막히게 잘 쓰고, 또 유려한 붓놀림을 자랑합니다. 서예가가 신중히 먹을 갑니다. 주제에 대해 고심하고, 마침내 붓을 들어 글씨를 적기 시작합니다. 그가 아름다운 솜씨로 적어낸 글씨는 바로…

“엥”

입니다.

참 깨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엥”을 상상해 보십시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엥, 이라는 글자에는 아름다움을 연상하기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좀 고상한 느낌이 없죠. 기껏해야 엥톨레랑스 같은 프랑스어가 조금 떠오를 뿐입니다. 이 글은 마치 그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슬픈 “엥”.

“왜 나한테만 그래?” 로 시작되는 일련의 독백은, 따로 떼놓고 보자면 그렇게까지 나쁜 장면은 아닙니다. 심리적으로도 맞습니다. 아귀가 들어맞고, 전개상 크게 잘못된 점은 보이지 않으며, 미학적으로도 따로 걸리는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부분이 굉장히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 파트는 작위적입니다.

이 일련의 독백은 너무 익숙합니다. 어디서 익숙하냐면 신문기사적으로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독백을 신문 기사에서 너무 많이 봤습니다. [용의자 XXX의 심경고백…]같은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기사에서. 그리고 이런 기사는 대체로 독자의 욕을 유도하는 기사입니다. 뻔뻔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저런 반응을 보이면 욕을 합니다. 변명이 아닌 반성을 촉구합니다. 맞는 반응입니다. 법리적으로 맞냐, 인권적으로 그르냐를 떠나서 – 사실 전 이런 쪽에 취약하므로 – 감정적으로는 이해 되고 맞는 반응입니다. 단지 저는 이 반응이 이 시점에서 유도되면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이 단편의 분량은 짧습니다. 사건도 딱 하나입니다. <미술학원 알바를 했는데 학원이 돈을 안 준다.> 심플합니다. 그만큼 작가는 심리묘사를 할 공간을 얻습니다. 나레이터는 가해자고 가해자는 고통받는 자신을 열심히 열거합니다. ‘고통받는’ 자신은 자신을 연민합니다. 이 글은 자기연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독자는 그걸 보면서 안타까워 합니다. 이른바 자기 연민용 글입니다. 이런 소설의 경우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엔딩은, 독자가 책을 덮으면서 “참 가엾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마지막에서 나레이터가 욕 먹어도 싼 새끼로 급작스럽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소설 내내 얘를 동정해왔는데 갑자기 소설 속에서 어… 그래… 근데, 얘 가해자였지… 하면 심정적으로 쉽게 욕을 하고 싶어지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해오던 대로 동정을 주기에도 좀 꺼려집니다. 결국 결말이 좀 허무해지는 것입니다. 여운이 급작스럽게 사라집니다. 저는 이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피카레스크로 갔으면, 그래서 독자가 덮는 순간 한때 이런 놈을 동정했다는 생각에 섬뜩하게 끝내버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또 아예 자기연민으로 갔다면, 그래서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얘를 동정하게 되었다면 이 작가에게 심하게 감탄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움을 달래 보기도 합니다. 제 결론은 ‘작가님이 C의 심정을 지나치게 신경쓴 것 같다,’ 입니다. 인간 쓰레기라고 동정받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특히 소설 내라면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주인공 요조도, 디테일을 빼놓고 보자면 애인을 세 명이나 사귀고 자기는 하루종일 모르핀이나 하며 일도 안 하는 인간 쓰레기중의 쓰레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소설을 읽은 사람은 절대 그렇게 여기진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시계태엽 오렌지도 다른 예시입니다. 주인공은 말도 못할 악당이죠.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가만히 두지는 않습니다. 몰입은 위력적인 무기고, 독자를 현실에서 유리합니다. 단지 책을 덮으면 좀 섬뜩해질 뿐입니다. 아그책님은 몰입이라는 무기를 훌륭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실력을 완벽하게 갖추셨습니다. 단지 그걸, 동정과 섬뜩함 가운데 어느쪽으로도 쓰지 않으셨던 점이 제게는 정말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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