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우 주관적이고 어쩌면 오독일지도 모르는 리뷰입니다. 혼란을 느끼고 싶지 않으신 분은 가볍게 패스해주시고 글 전개상 스포일러가 계속됩니다.
저는 이 소설을 리뷰 할까 말까를 망설였어요. 사실 이렇게 망설여지는 작품은 리뷰를 안 하는 게 좋긴 하더라고요. 여태까지 망설이면서 썼던 몇 몇 리뷰가 그다지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기도 하고 리뷰 쓴 걸 저 혼자 후회하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하지만 언젠가 한번은 아그책 작가님께 리뷰로라도 말을 걸고 싶었어요.
우선 작가님이 남들이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주제 삼아서 작품을 쓰시는 것 자체에 점수를 듬뿍 듬뿍 주고 싶어요. 잘 접근하기 힘든 주인공들 – 몇 작품 안 읽어봤지만 특히 퀴어를 소재로 해서 쓴 작품들을 읽을 때 놀라웠어요.
<마녀사냥>도 결국 그런 작품이군요. 전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어 본적이 없고 주변에 그런 친구도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 없어요. 문학작품이나 영화 또는 방송에서 보고 들은 게 전부거든요. 그러니 그들의 심리가 어떤지 빠삭하게 모르기 때문에 작가님이 구현해 놓은 작중 인물인 MTF 트렌스젠더의 심리가 세밀히 잘 묘사된 건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르는 것에 대해서 리뷰를 어떻게 쓴다는 거냐? 하는 마음이 절 자꾸 망설이게 하는 거죠. 하지만 이성에 대해서 모른다고 이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못 쓰란 법 없고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사는 누군가의 삶이라고 해서 안 쓸 수는 없는 법. 리뷰도 마찬가지죠. 사실 주인공이 트렌스젠더라는 이유로 리뷰 쓰기를 기피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편견이란 생각이 들어서 리뷰를 쓰기로 했어요.
결국 성소수자도 인간인데 뭐 얼마나 별다르겠어요. 그들도 부당한 일 당하면 화나고 분노를 폭발시킬 수도 있고 혼자가 되면 아프고 힘들고 소외감 느끼고 사랑받고 싶고 다 똑같겠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존재의 심리에 대해서 알 수 있다면,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얻는 가장 큰 건 아무래도 간접 체험과 거기서 얻는 또 다른 이해일 테니까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아 이런 게 정말 힘들겠구나…
근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실 독특해서 이해가 쉽지 않았어요. 더구나 전 이 주인공이 사회적 존재가 아니고 은둔형이고 그 또래 집단에서 겪는 소외감–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카톡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학교 다닐 때도 별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이 사람은 여성으로 살기로 한 것 때문에 소외된 것이 아니고 남학생일 때부터 원래 그랬던 거죠?- 거기다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여성의 몸을 가진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 제가 알기론 자신을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남자는 오히려 자기 남성기를 혐오해서 만지기도 싫어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주인공이 가슴(여성기)에 대해서 느끼는 불편감이 사실 이해가 잘 안 되긴 했어요.- 그래서 결국 미쳐버린 사람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런 제 이해가 틀리다면 이 다음부터 전개될 리뷰는 모두 잘못된 서술이 될 거예요. 만천하에 나 오독했어요.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없죠. 그래서 더 이 부분에 대해서 더욱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만약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저 여드름 투성이 남학생이 실존 인물이라면 – 진짜 과거에서 온 남자일 때의 나라면 – 저는 SF 소설도 읽으니까 타임머신이 진짜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처음에 그렇게 읽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뒷부분의 행동이 전혀 납득이 안 되고 개연성이 없어서 다시 봤어요. 아무리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도 멀쩡한 여성이 갑자기 가해자를 찾아가 찌르진 않거든요. 저 정도 설득력으론 어림도 없어요. 나 성폭행 당했어-> 그 놈이 자꾸 생각나-> 죽이고 말거야. 현실에서 이렇게 바로 전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요? 전 이런 가해는 성폭행 당하는 그 순간 우발적으로 저질러지지 않는다면 이런 보복 살인(?)은 실제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참 후에 이뤄지는 게 오히려 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뉴스에서 몇 십년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찔렀다 하는 뉴스가 나오면 고개가 끄덕여지거든요.(여성들은 수치를 드러내기보단 숨기고 싶어하는 게 더 큰 것 같아요. 특히 피해자인 여성은 시원시원하게 행동하지 않거든요. 물론 늘 그렇듯 예외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이 부분은 충분한 설득력이 필요해요.)
작품 분류에도 따로 SF라고 돼 있지 않으니 저 소년은 망상 속 인물이다. 그러니 주인공이 미친 거다로 결론내리고 이야기를 읽는 쪽을 택한 건데요. (아 이것도 논리적 비약이 되나요?) 저는 그쪽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그렇게 하고 봤을 때 비로소 커터칼 테러를 한 마음이 이해가 가거든요.
만약 작가님이 생각하신 것도 이거라면 전 이 작품 안에서 저 소년이 망상 속 인물이라는 암시는 주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독자를 끝내 헷갈리게 한 채로 끝내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요? (다 읽고 났을 때 저처럼 소년이 진짜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왔었던 거야, 이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까요?)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도 소년과 여자가 함께 있는 장면을 사람들 속에서 배치시켜서 주인공이 혼잣말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든지– 망상 속 인물이다는 확인이 될만한 장면– 설혹 망상 속 인물이 아니라면 둘이 다정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뭐라고 한마디를 해주든지– 진짜 타임머신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소년이라는 확인이 필요한 장면–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성폭행 피해를 입은 시점에서 커터칼 테러에 이르기까지의 내면을 좀 더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서 독자에게 이해시키게 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런 게 없다 보니 이 작품은 모호하고 애매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면이 있어요.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그게 더 심해져서 뒷 부분에서 ‘괴물’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이게 무슨 말일까 계속 갸우뚱하면서 읽었어요. 미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려다 보니 의도적으로 그런 걸까 싶으면서도 적어도 이야기가 끝난 다음엔 아 이 사람이 미쳤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은 들게 해줘야 하는데 전 이야기를 다 읽고도 미쳐서 그런 건지 아니면 트렌스젠더로 살아오면서 사회적 소수자로서 그동안 받았던 분노가 폭발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여성성이 침해당하는 것이 보통 여성들과 좀 달라서 그런 건지 솔직히 알 수가 없었어요. 이 주인공이 트렌스젠더라서 이해가 안 되는 건지 미친 사람의 정신세계라 이해가 안 되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게 이 이야기 내에서 병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틀린 걸까요? 어렵네요.
평소에 작가님의 몇 몇 작품을 보면서 내면 묘사를 잘 한다. 잘 쓴다 생각하긴 했지만 더구나 이렇게 어려운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잘 풀어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한데요. 살짝 아쉬워서 리뷰를 써봅니다. 전 이 혼란스러움이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위키백과를 검색해보니 ‘전미 폭력반대 프로그램 연합의 2010년 보고서에서, 2010년에 27명의 성소수자가 그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살해당했으며, 그들 중 44%가 트랜스여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또 전 세계에 걸쳐 3일에 한 번씩 한 명의 트랜스젠더가 살해당한다는 보고도 있다네요. 사실 이 정도인가 놀랐습니다. 전 이런 사회도 이해가 안 가긴 해요. 옛날에 미국에서 백인들이 흑인과는 화장실도 함께 쓰지 않았던 웃지 못할 일이 실제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