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한 좀비소설을 읽은 기쁨에 리뷰를 씁니다. 스포일러는 아주 조금 했지만 작품을 먼저 읽고 와주세요. 작품 먼저 읽는 게 무조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소설 속에 담긴 고유의 분위기에 일단 먼저 취하고 서서히 죄어오는 공포감, 주인공이 느끼는 상황과 감정과 별도로 독자로서 추리하는 기쁨,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다 또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휩쓸려 가며 끝이 어떻게 될까 계속 상상해보는 즐거움까지. 난 그런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그런 게 다 있었다.
눈보라치는 산장에 홀로 고립된 산장지기의 이야기.
섬, 폭설에 갇힌 외딴 집, 폭우로 고립된 마을 등은 추리소설이나 호러소설에서 많이 사용되는 배경이지만 또한 그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기도 해서 아무리 많이 쓰이는 클리셰라도 또 봐도 상관없다.
폭설에 고립된 산장도 그런 곳이다. 아무도 없는 곳, 홀로 고립됨으로서 느끼는 안락함과 불안감이 교묘히 배합된 공간. 따스함을 살릴 수 있는 멋진 벽난로와 책이 있고 며칠을 버틸 식량도 충분하다면 혹 도시 문명에 염증이 난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 푹 파묻혀 그런 휴가를 보내고 싶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까? 난 그런 대리체험 하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가 좋았다. 역시 본격적인 사건은 누군가의 방문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여기까지도 뭐 그러려니 했다. 공포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테니. 어떤 방문자가 올까 기대하며 읽어나가고 있었다.
3일 정도 아무도 올 수 없는 고립된 산장이라면 그게 누구든 낯선 사람과 단 둘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더 무서울 수도 있지만 이 젊은 산장지기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반가워서 손님을 들이자마자 주절이주절이 떠들어댄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챈다. 너무 오랜만에 사람을 봐서인지 꽤 긴 말을 혼자 떠들어대고 있는데도 꼼짝 없이 서 있는 남자, 게다가 침을 주룩 흘리고 상태가 이상하다 ….
으악, 좀비가 방문했다고? 좀비는 정말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작품소개를 먼저 안 읽은 덕분.)
그리고 연이어 방문한 손님은 갑자기 그 좀비를 너무도 쉽게 해치우고 응? 이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려고 하는 거지? 계속 좀비들이 밀려들어서 젊은 산장지기가 공포에 질린 채 장작을 휘둘러대며 고요한 산장에서 피 튀기는 혈투를 3일 동안 벌이려나? 그런 전개를 잠깐 상상했다가 그것이 여지없이 깨지고 나서 또 이야기는 읽어 가면 읽어갈수록 다른 특이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 전개 역시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추리까지 하란다.
이쯤되면 정말 없던 흥미도 생기게 마련이다. 특이하니까. 좀비와 추리게임을 하게 되다니…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력이 좋아야 한번 읽을 때 이해가 되는 소설이다. (난 그냥 따라가다가 앗, 하고 다시 되돌려 읽어야만 했다.) 처음 읽는 독자분들은 정말 좀비와 맞딱뜨렸다 생각하시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억을 하면서 읽어나가시길. 기억력이 딸리면 죽는 거야!!!)
우선 고립된 산장의 느낌도 좋고 좀비에 대한 색다른 각색도 마음에 들었지만 예측 불가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고 소설 <라쇼몽>이 보여준 매력적인 ‘시선’, 즉 같은 사건의 다른 묘사 부분이 추리의 단서가 된다는 것도 좋았다. 나는 주인공이 결국 산장지기의 뇌를 먹은 다른 좀비였거나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좀비였다로 결말이 날까 상상했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결말인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예상은 하나도 들어맞질 않았다. 기분 좋게 속아버렸다. 이렇게 허망하게 속아버리면 분해야 하는데 소설 속에선 왜 기분이 짜릿한지.)
폭설이 끝나고 산장에서 벗어나고 나면 사라질 공포가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공포 속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으니 저 주인공의 마지막 처절한 확인이 더욱 안타깝다. “아직, 살아 있나요?” 그렇게 속삭일 때 차라리 좀비가 벌떡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은 주인공만의 것일까? 흰 머리카락이 저렇게 공포스러워도 되는 건가? 흑흑!
무서우면서도 긴장되고 비극적이면서 재미있는 독서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