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살인자의 내면세계 감상

대상작품: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작가: 서승원, 작품정보)
리뷰어: 잭와일드, 18년 8월, 조회 30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를 읽으며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소설, 시, 희곡, 비평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의 폭력성과 악을 형상화하였다고 평가받는 조이스 캐럴 오츠는 ‘좀비’에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좀비 노예를 갖고 싶었던 서른 한살의 백인 남자 쿠엔틴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화자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쿠엔틴은 저명한 교수인 아버지와 인자한 어머니, 성공한 누나를 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으로 좀비를 갖기 위해 전두엽 절제술이란 것을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을 납치해 자신이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제멋대로 생각해낸 방법으로 이들을 수술하고 실해하여 죽이는 행위를 반복하게 되고 그 일련의 과정을 일지로 남긴다. 마치 평범한 일상을 일기에 표현하듯 담담하게 서술하는 쿠엔틴을 보며 일상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폭력이 녹아들어 있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시대 거대한 세계에서 괴리되어 외로움과 고립감 속에서 살아가던 개인이 통제불가능한 악의 욕망으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현대인의 삶을 풍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츠는 희대의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작품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오츠의 ‘좀비’는 악인이 일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악인의 프레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이코패스의 시각으로 세상을, 인간의 내면을, 그들의 사고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독자들은 악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과 관점으로 단순화하시키고 간결하고 명쾌한 순수한 욕망의 화신이 되는 것… 서늘한 공포와 아찔한 충격이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추악한 존재를 대면하게 되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알수 없는 슬픔과 연민이 밀려온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는 오츠의 ‘좀비’와 흡사한 점이 많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점, 그 살인자가 일인칭 화자로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점, 살인의 동기가 ‘좀비 노예를 만들고 싶다는 것’과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으로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렇다. 이야기를 표현하는 오츠의 건조한 문체와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의 초등학생의 순수함이 이야기의 충격의 진폭을 더 크게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언급된 ‘전두엽’이 쿠엔틴의 전두엽 절제술이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는 오츠의 ‘좀비’가 가진 장점이 좀 퇴색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코패스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이 ‘공감’을 얻기 위해 ‘마음’을 찾는다는 설정이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오츠의 ‘좀비’가 평범한 독자들을 사이코패스의 눈높이로 인도한다면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결말을 부자연스럽게 따라가며 확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수 욕망의 화신인 주인공이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문제와 감정을 잘 숨기고, 평소 얌전하고 성실하다는 주위의 평가로 이들을 미리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타인이 그들을 바라보는 평가이다. 일인칭 화자로서 그들의 내면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이야기에서는 욕망의 화신으로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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