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이란 단어는 라이트노벨을 번역한 단어지만, ‘경’자가 가벼울 경 뿐 아니라 굳을 경자도 있기 때문인지 경소설은 라이트노벨이라는 단어보다는 좀 더 무거운 느낌이 있다.
요즘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3일간의 행복’ 등, 라이트노벨’스러운’ 글이 꽤 인기를 끌었다. 읽어보면, 라이트노벨스럽지만 완전히 라이트노벨은 아니다. 라노베가 맞다, 라노베가 아니다로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라노베가 아니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 라노베가 아닌가. 이 차이를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면에서는 나름대로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췌장..’등의 소설을 반半라이트노벨, 혹은 경소설이라 분류한다.
그리고 소설 쓰는 이야기도 내 기준에서는 경소설이다.
1화를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은, 와, 잘 읽힌다. 였다. 우선 밝혀두자면, 재미의 고조는 있지만 읽느라 지루한 부분은 없었다.
가독성이 좋다는 건 기본적으로 재밌긴 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딱 잘라 재밌는 작품이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면이 얻어놓은 점수를 깎아먹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선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 있더라도 필요하면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독백이 위주인데,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대개 작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땐 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작법서’라는 명목으로 글쓰기에 대해 수백 쪽 씩 쓸 수 있는 건 작가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읽다보면, 조금 과하게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감상’이 들어간 것이 느껴진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좋은 문장, 좋은 문단들이 많지만, 좀 쳐내면 깔끔해 보일 것 같다. 뭐 부족한 것보단 많은 게 나으니까, 이대로도 차선은 된다.
다음으로, 처음 꼽은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건 이야기의 부재다.
마지막은 소재의 활용법인데, 이건 어느 정도는 두 번째 문제의 동어반복인 셈이라, 둘을 합쳐 이야기해야 할 듯 하다.
작품의 소재와 소재에 따른 큰 맥락은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가 글을 쓰는 과정을 주인공의 심리 묘사 위주로 전개한 것’이다. 사실상 서브스토리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작품의 스토리는 저 말로 전부 요약가능하다. 그리고 이 소재가 가진 문제는, 작품이 작품의 독자를 많이 가린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독자는 크게 ‘작가인 독자’와 ‘독자인 독자’로 구분할 수 있다.
작가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작가인 독자’가 읽기에 공감하고 이입하기 좋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인 독자’에게 이 작품은, 공감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가 나에 해당한다. 작가가 주인공인데 글 쓰는 사람인 내가 공감하기 어려웠던 건, 주인공의 가치관과 내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히 나는 천재가 아니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범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범재란 무엇인가? 거시적인 관점에서야 범재는 정의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작가는 평범한 작품만 써내는군, 이 작가는 대단한 작품들을 써내는군, 하고 판단할 수 있다.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99명은 범재나 그 이하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파고 들면, 범재는 정의하기 어렵다. 99명은 모두 다 범재에 속해도, 각자가 각각 다른 가치관과 작품관을 가졌다. 그런 면에서, 이런저런 비평을 읽다보면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정확하게 집어냈다’같은 말을 칭찬으로 쓰는 경우를 꽤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 반대 방향을 향한다.
작가를 주인공을 삼은 작품 중(바톤 핑크 같은 작품을 제외하면)에 롤모델이 되기에 가장 적절한 작품은, 만화가이긴 하지만, 바쿠만일 거라 생각한다. 바쿠만은 직관적인 재미를 떠나 정말 대단히 세심하게 독자를 배려하는 작품이다. 매니악한 부분이 점수를 깎으면 대중적인 부분으로 그걸 만회한다. 또 다양한 서브스토리로 작품의 외연을 넓힌다.
작품의 주인공이 대중적인 작품이냐 아니냐로 고민한다고 해도, 이 작품조차 그런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끼워 넣을 곳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밀렸는데, 사실 제일 아쉬웠던 점은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있지 않은 점이었다. 선생님도 동기도. 주인공에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메인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둘조차 병풍 수준으로 느껴진다…
요약하자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중견 작가만 써야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라는 감상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