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편은 사람들의 경계 대상이 되는 신비로운 마녀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평범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의 미움을 받는 여성 (이를 테면 집시 처녀라던가)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지키는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영생을 사는 여성과 인간 남성의 사랑이라는 소재 자체는 워낙 클래식하여 일견 진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색이 변해가는 꽃이라는 신비로운 상징물, 그리고 극을 이끄는 두 사람의 매력적인 대화 덕에 진부함의 늪에 빠지지 않고 그럭저럭 잘 나아간다.
두 사람은 마을을 등지고 벗어나지만 결국 남자는 여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했다. 그 대가로 두 손을 잃지만, 그들은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필멸자인 쪽의 죽음이라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장황하지 않은 묘사였다. 이는 시처럼 절제된 매력을, 동시에 이 세계에 대한 신비감을 준다. 그리고 그 절제미는 베이커의 죽음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아침햇살을 보며 숨을 거둔 남편을 바라보며 오미엔이 보인 반응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슬프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아낙네처럼 오열하지 않는 그녀의 절제된 슬픔은 마치 꽉 찬 용기 밖으로 어쩔 수 없이 살짝 새어나온 물 한 방울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애절한 절규보다도 오히려 그 안타까움이 와닿는다.
제목은 신이 없는 세상에서 라지만, 사실 신의 존재 유무는 중요치 않다. 어차피 자기 자신도 도울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맥거핀처럼 그려질 뿐이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머리카락 색을 지닌 어떤 신비로운 핏줄의 여성 두 사람도, 뭔가 신과 관련이 있을 법한 분위기를 띄우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에 대해 구체적인 설정으로 오히려 그 신비로움을 망치는 것보다는, 그것을 안개 속에 둔 채로 두 남녀의 감정선을 살리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짧은 단편이라 읽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만큼,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여 이 작품의 여운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