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현실, 그리고 재미와 메세지의 훌륭한 조합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데몬과 도시의 끝에서 (작가: 연두왜성, 작품정보)
리뷰어: 문보배, 18년 7월, 조회 174

* 리뷰라 경어체로 쓰려고 노력했는데 습관이 들지 않아서인지 도저히 글이 안 써져 부득이하게 ‘-다’체를 쓰게 되었습니다 ㅠ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가가 판타지 소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민감한 주제와 관련된 메세지를 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시도가 성공했는지는 개별 독자가 판단할 일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현실이 어떠한 비유나 변형도 없이 그대로 들어가있거나, 혹은 과장된 경우는 소설이 아니라 선전물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줘 독자를 자칫 부담스럽게 할 수 있다 . 메세지가 좋아서 읽고는 싶은데 도무지 재미가 없달까. 그렇다고 비유에 너무 힘을 주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아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데몬과 도시의 끝에서’는 이런 점에서 감탄이 나오게 하는 소설이다. 재미와 메세지 모두를 훌륭하게 잡아냈다는 점에서.

 

절묘한 현실 반영

 

첫 시작부터 신선하다. 심야학습실에서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하는 피폐하고 우울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나오기에 내가 장르를 착각했나 싶었다. 판타지가 아니고 현실을 가져다놓은 느낌에. 이내 서술되는 그 학생들이 영혼 없이 학습실에 남아 공부하는 이유를 보고서야 아, 판타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몬과 도시의 끝에서’의 세계관은 초능력자 사회다. 비초능력자는 인구의 12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불쌍하면서 어딘가 친숙한 학생들은 비초능력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공부에 목숨을 걸었다. 비초능력자가 사람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그나마 학벌이라도 높아서 초능력자들 일이나 돕는 것뿐이기에. 주인공 달리는 그래서 옆자리 친구가 현실을 이기지 못해 자퇴를 선언해도 밀려오는 회의감을 외면하며 계속 공부를 한다.

초능력자는 대체로 잘 먹고 잘 사는 분위기지만 남자 주인공 ‘염수’처럼 특이 초능력자는 또 경우가 다르다. 국가는 특이 초능력자를 사용하기 위해 신고를 격려하고, 국정원은 사냥꾼까지 풀었다. 이 소설은 사냥꾼을 피해 도망다니던 염수가 의뭉스런 기업 단체에 의해 납치가 되고, 공부만 하던 비초능력자 달리가 운이 안 좋게도(진짜 운도 드릅게 없어 보여 불쌍해 죽겠다. 물론 뒤로 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같이 납치가 되며 시작된다.

초능력자와 비초능력자의 삶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이 소설의 묘미가 드러난다. 현실과 판타지의 절묘한 조합, 그리고 판타지를 통해 현실을 스리슬쩍 비웃는 듯한 작가의 필력이 매력적이다.

 

<초능력으로 인한 고용차별, 국가 경제의 암입니다.>

<특이초능력자 ‘데몬’은 국가의 소중한 자원입니다. – 데몬 발견 시 국번 없이 156>

염수는 두 공익광고가 지하철 천장에 나란히 붙어있다는 사실에 비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1화에 나오는 부분. 어디서 많이 본, 너무 익숙한 문구와 초능력의 조합이 기가 막히다. 이건 시작이고 뒤로 갈수록 작가님이 얼마나 현실을 기막히게 판타지 속에 그려넣었는지 알 수 있다. 필력이 부족해서 표현이 잘 안 되는데 끝까지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상한 단체에게 납치된 주인공들이 오히려 납치 전보다 안정적이고 희망찬 삶을 꿈꾼다는 사실이 이 초능력 사회가 약자들에게 얼마나 비정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판타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세계관

 

 

주인공들이 비참한 현실에 좌절하는 내용만 있었다면 몇 화 보다가 답답한 속을 부여잡고 읽기를 포기했을 거다. ‘데몬과 도시의 끝에서’는 판타지라는 점을 십분 이용해 쾌감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과학과 기술, 영리한 머리와 초능력을 이용해 주인공들은 현실에 대한 나름의 타개책을 강구한다. 이런 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요소가 주인공들 중 하나인 ‘해단’이라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현실에서 여자가 남자를 위력으로 제압하기는 힘들다. 억울하고 슬프지만 대개는 그렇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하고 싶어도 여자는 그게 불가능한 사회다. 남자가 했으니까 나도 해볼래 했다간 전국가적 관심, 전방위적 욕과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사회니까. 이 소설의 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 ‘해단’이라는 인물은 이 현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무너뜨리는 존재다.

‘해단’은 여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혹은 시도하려는) 남자들만 골라서 엄청난 위력의 초능력으로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 무자비하게. 여자들이라면 모두 카타르시스를 느낄 이러한 설정은 해단의 액션 장면을 실감나게, 강력하게 표현하는 작가님의 필력을 업고 더욱 빛이 난다. 세계관 속 일반 남자들에게야 잘 봐줘봤자 ‘미친년’, ‘범죄자’겠지만 여성 독자인 나는 내가 줄곧 기다리던 여성 영웅을 보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답답한 현실에 공감할 수도 있으면서, 현실에서는 풀지 못하는 갈증을 판타지적 요소로 풀게 해주는 이 소설을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여자 인물들은 눈에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친다. 주요 여자 캐릭터는 달리, 해단, 시아인데 이 여자 캐릭터들은 신념도, 나름의 소신도 있지만 그것보다 매력적인 것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성공하려는 달리의 욕망, 당한 것은 그대로 갚아주려는 해단의 욕망, 원하는 것(특히 자신이 점찍은 남자)은 가지려는 시아의 욕망. 세 여자 인물들은 성격도, 능력도 다르지만 가진 모든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욕구를 충족한다는 점에서 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해가는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져 읽는 것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

주요 캐릭터들만 매력적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뒤로 갈수록 더 다양한 여자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하나 같이 흥미롭다. 달리와 염수를 납치한 단체의 중간 책임자인 예슬, 유튜브를 이용해서 사회 부조리에 반항하려는 하련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끝이 없다. 여자들이 잔뜩 나와 활약하는 여성 중심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소설을 좋아할 거다. 남자 인물 중에서도 예쁜 미모와 조신한 성격을 자랑하는 인물들이 소수 있긴한데 여자 인물들의 후광이 훨씬 강렬하다.

 

 

 

다 쓰고 보니 이 소설이 얼마나 재밌는지, 얼마나 매력적인지 표현이 안 된 것 같아 아쉽다. 뭘 더 덧붙여야 할까 계속 고민했지만 글을 길게 늘여봤자 소설의 재미만 반감시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공감과 재미를 둘 다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판타지 ‘데몬과 도시의 끝에서’ 읽어보세요. 제목도 정말 매력적이잖아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