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는 만들어진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을의 그림자 (작가: 이나, 작품정보)
리뷰어: 열한시, 17년 2월, 조회 99

 초록색 감을 한 입 베어문 느낌. 떫은 맛이 엉겨붙어 한참을 머문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힘겨운 관계를 끌어안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그림자는 언제다 단 한 명의 곁에 앉아 있는다. 간혹 누군가는 홀로 서서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말할 것이다. ‘네가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을의 그림자]는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무관심에 한 떨기의 악의가 곁들어졌을 때는 영혼에 깊은 멍이 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푸른 반점으로 가득한 을의 몸은 마치 견디지 못한 그의 영혼이 밖으로 내비치는 SOS사인 같다. 무관계에서 비롯된 일상 속 상흔은 하루도 빠짐없이 누적되어 을을 그림자의 늪으로 서서히 끌어당긴다. 그것이 을의 잘못일까? 사회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을은 자신의 성향을 바꾸어야만 했을까?

무대 앞으로 끌려나온 을이 요구받은 것은 아주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관계-관객과 광대-를 일방적으로 요구당한 을은 어쩔 줄을 몰라한다. 학생들은 그런 을을 비난하며 무대에서 끌어내린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상냥하지 않다. 온갖 비아냥과 폭언이 뒤섞인 채 그림자 속의 무대 아래로 내려온 을. 이미 그 시점에서 을은 허리께까지 그림자에 빠진 것이 아닐까.

을은 컴퓨터에 저장된 출처 모를 포르노를 보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포르노 속에서 비추어진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남성은 모자이크 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지만 여성은 울며 비명지를 뿐이다. 그런 일방적인 관계에서 을은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일방통행의 사회생활 속에 파묻힌 을이니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을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을은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했을까. 나는 ‘아무것도’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에서 우리가 논해야 하는 것은 을의 행동방향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을이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가? 개개인마다 각자의 성향이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일방적으로 요구당하는 관계를 즐기지는 않는다. 따라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을이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한다.

을은 그림자에 반쯤 잠긴 채,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이 양을 쫓아다닌다. 양의 입장에서는 불쾌했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이 자신을 계속 쫓아다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양이 더 상냥해야 했을까. 담배나 피는 날라리 여학생의 욕설로 인해 을이 그림자가 된 것일까. 글쎄, 양을 향해 을의 등을 떠민 것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자. 작가의 손가락은 을에게도, 양에게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리라 감히 추측해본다. 그림자를 만든 범인은 한 명이 아니다. 오늘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한 명의 그림자를 만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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