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현실에 판타지 한스푼?! 의뢰(비평)

대상작품: 셰어하우스-브레인 좀비-1편 (작가: 윤여경, 작품정보)
리뷰어: 아나르코, 17년 2월, 조회 41

“제 꿈은 재벌 2세에요. 근데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재치에 감탄을 마지못했던 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냥 웃고 넘길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벌 2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간으로 대접받고 살기위해서는 삼대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소설 속 구절을 보게 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노력은 현재형이나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라고,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태어나기 전 이미 결정되어진다고,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다시 그런 세상을 이야기한다. 노력의 여부조차도 이미 결정지어진 세상에서, 이미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 내몰린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셰어하우스 입주 모집-

이런 집 어떠세요? 돈이 없는 사람들도 돈을 물 쓰듯 쓸 수 있는 셰어하우스. 일 년 내내 잠 안자고 게임 해도 건강함. 다른 사람이 노벨상을 받아도 내가 칭찬받는 곳. 언제든 입주가능.

자격 : 나이불문. 신체 건강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음. 발명, 수집, 오지 탐험경력 등 특이한 경력환영.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라는 말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의 포기까지 더해지면 오포 세대가 되고, 마지막으로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면 칠포 세대가 된다고 한다. 삼포는 몰라도 오포, 칠포 정도의 세대라면 이런 셰어하우스에 솔깃하지 않을까?! 꿈도 희망도 없고, 자연스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당연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돈이 없어도 돈을 쓸 수 있고, 게임만 해도 건강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이건 뭐 최고의 조건, 최고의 선택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조건의 셰어하우스가 존재한다는 것, 이게 정말 가능한 것일까?! 뭐, 설사 다 좋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노벨상은 왜 튀어나온 것인지, 특이한 경력은 또 왜 필요한 것인지… 이게 뭐야?! 시작부터 뭔지 모르겠는데, 또 뭔가가 궁금하기는 한 것 같고… 흠, 이런 오묘한 생각을 유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물두 살에 나름 크게 성공했지만, 더 큰 성공을 위해 도전했다가 사기를 당하고, 그 사기꾼을 잡기위해 십년동안이나 세계 곳곳을 방황하게 되는 주인공. 우연히 마주하게 된 사기꾼을 쫓다가 더 우연히 마주한 키아누 리브스에게 핑크 알약을 얻어먹게 되고 불사의 삶을 살게 된다. 이 핑크 알약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해보려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핑크 알약의 쓰나미가 -그것도 짝퉁으로-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좌절하게 된다. 더군다나 불사의 삶이면 좋아야 하는데, 더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저런 혼란이 더해지게 되고, 결국에는 불사의 삶을 포기하려는 선택을 주인공은 하게 된다.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을 작가는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포, 칠포세대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원본보다 복제품이 먼저 들어와 판치는 세상-짝퉁세상!!-이라든가, 가족 간의 관계가 파괴 되어가는 세계라든가, 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것만은 확실한듯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노력의 여부조차도 이미 결정지어진 세상에서, 이미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현실을 소설 속으로 그대로 옮겨 놓는다. 여기까지였다면 무척 평범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 판타지라는 한 스푼을 더한다.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키아누 리브스를 갑작스럽게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가 핫한 트렌드라며 권하는 -파란색도 하얀색도 아닌(매트릭스에서는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기억하는데…)- 핑크알약은 가상과 현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순간의 시작이 된다. 가상과 현실을 무너뜨리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와 불사의 삶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를 교묘하게 뒤섞어 소설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리저리 구구절절 말했지만 정작 내용은 아직까지 그리 복잡하지도, 그리 깊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1편은 프롤로그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초석을 다진다고나 할까. 기본적은 상황은 어느 정도 알았지만, 시작에서 그랬듯이 아직까지도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궁금증에서 시작해 궁금증으로 마무리되는 1편이랄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2편으로 넘어가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