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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빨간 제비부리댕기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달바라기, 18년 6월, 조회 128

가급적비님이여 오시어빨간 제비부리댕기 작품 모두를 읽으시길 바래요. 스포일러가 수도 있거든요.

 

빨간 제비부리댕기 1 테이스티 문학 공모전 우수작인비님이여 오시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속편이라기보다는 옴니버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공통된 인물도 없고 이야기도 이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일단 좋았어요. ‘비님이여 오시어 좋은 곳에서 끝났으니까. 이담은 모량을 다시 찾아갔을까, 용의 저주는 어떻게 실현될까, 하는 궁금증들을 잔뜩 안겨주었지만 그걸 대답해주지 않았기에 좋은 이야기였어요. ‘빨간 제비부리댕기비님이여 오시어 후일담이 아니라 다행이었어요.

비님이여 오시어 모량과빨간 제비부리댕기 이홍은 아마 같은 모계혈통이겠죠. 그리고 어머니와 자매들을 통해서만 이어지는 능력도 공유하고 있고.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은 창작물 속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죠. 너무 흔해서 때로는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고. 그래서 너무 쉽게 다뤘다가는 동물을 사람으로 바꾸면 아무 의미 없어지는 능력이 되기도 해요. 비슷한 능력이 등장했던 버터칼 작가님의 장편묵호의 에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능력의 진부함을 씻겨내요. 비슷한 능력을 다르게 받아들인 인물을 등장시켜 주인공과의 적절한 대조도 일으켜냈고.

장아미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작가님 특유의 뜨거운 맨살에 닿을듯 말듯한 섬세한 묘사와 토끼굴에 빠진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로 능력을 표현해요. 그래서 진부하기는 커녕 낯선 이의 속을 방문한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져요.

정성스럽게 몸을 손질한 소녀 이홍은 그다지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이끌려 산으로 들어가요. 어떤 절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홍이 산신에게 바칠신부간택되었기 때문에.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처럼, 이런 설정 역시 드물지 않죠. 실제로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졌던 일이고. 그래서 처음 읽기 시작했을 , 조금은 뻔한 이야기가 될려나했어요. ‘로맨스릴러 만큼, 도중에 남자든 여자든 연인에 가까운 혹은 연인이 인물이 나타나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그런 이야기.

다행히 그렇게 되지 않았죠.

이야기를 조금 뛰어 넘읍시다.

길잡이는 도망가고 이홍은 어린 범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감을 하며 살결을 스치고 서로를 삼키기 걸음 앞까지 가요.

하지만 멈춰요. 길잡이에게 또는 어린 범에게 이끌려 움직이던 이홍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해요. 앞서 언급했던 재물로 바쳐지는 소녀라는 흔한 이야기와도 다르고 클리셰를 비트는 소녀의 재치라는 다른 클리셰와도 다른 행동이 어어져요. 소녀는 여리면서도 강했고, 매혹적이면서도 잔혹했어요.

늙은 범의 도륙된 시체 위에 올라선 소녀는 삼각산의 새로운 주인이 되고 수호자가 되요. 범의 피로 시뻘겋게 물든 이홍의 치마가 피의 무게에 지쳐 늘어진 모습이 떠올랐어요. 끝에서 발등으로 흘러내리는 핏줄기도.

남은 생이 위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죽음에 대한 복선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이홍이 산의 새로운 산신이 거라는 암시였어요. 이홍을 보낸 사람들은 이홍의 운명은 통곡바위에서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도리어 산을 울리는 이홍의 통곡이 아니라 죽고 추방당한 범들의 포효였죠. 그리고 왕을 위한 동물들의 울음. 

비님이여 오시어만큼이나 앞으로의 일을 궁금하게 만들지만, 아무도 그걸 알려주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지막이었어요. 

위에서 뛰어넘은 부분에 백이라는 여자가 있었어요. 이홍과 백이의 관계는 결단코 줄로 설명될 관계가 아니란 독자는 있어요. 우정이나 연정 따위의 뻔한 단어로는 묘사할 없는 둘의 관계가 교차하지 않는 시선과 사이를 가로지른 단도로 그려져요. 하지만 독자에게 주어진 단서는 뿐이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없어요. 그저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본편보다 이야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있을 뿐이에요.

이런 식으로 본편에 담겨지지 않는 이야기의 여백을 다루는 쉽지 않아요. 자칫 잘못하면 떡밥만 뿌리고 회수는 안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너무 조심하다가는 그런게 있었던가 하는 반응이 돌아오니까요. 백이의 존재는 필요한 만큼만, 하지만 끝까지 읽고나면 주인공 이홍만큼이나 인상적인 존재로 남아요. 절묘한 무게조절이었어요. 역시 백이와 이홍의 과거 이야기는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여백으로 남아있어서 좋은 이야기니까요.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중 하나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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