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상황을 상상하곤 한다. 감상

대상작품: 서랍 속 낡은 일기장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별해무, 18년 5월, 조회 25

서랍 속 낡은 일기장은 어느 날 우연히 주인공이 서랍 속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짧지만 임팩트 있게 그린 작품이다. 우선 제목부터 나의 시선을 끌었다.

지금은 일기를 쓰고 있지 않지만, 최소 대학생 때까진 나름대로 일기를 꾸준히 써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 방청소를 하면서 책장 및 책상을 정리하다가 옛날에 썼던 나의 낡은 일기장들을 몇 권

발견한 적이 있었다.

잠시 하던 청소를 멈추고 앉아서 나의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붉은색의 가죽 장정 케이스에 보관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일기장의 제목은 <시간의 그림자>였다.

어렸을 때 고종사촌들과 어울려 놀면서 겪은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있던 일기장의 내용.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서 키득키득 얼마나 웃었는지. 새삼 그때의 기억과 추억이 떠올라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한 느낌. 또 하나의 일기는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돌려가며 썼던 <솔로몬>

이라는 이름의 교환일기였다. 당시 다녔던 학교가 남녀공학이었기 때문에 몇 반 누구누구를 좋아한다는 수줍은

고백들로 채워진 내용의 일기였다. (물론 전해지지 않을 고백이었지만)

친구는 A라는 남학생을 좋아했고, 나는 B라는 남학생을 좋아했고.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려나?

누군가를 좋아하면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되는 것 같다. 좋아했던 남학생을 생각하며 직접 지은 시들도 일기장엔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오~! 그런데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지금 읽어도 와… 내가 이런 감성을 갖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나름 아름다운 내용들의 시가 참 많았다. (자화자찬 ㅎ)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학업과 성적에

관련된 그때의 고민들로도 가득했던 일기의 소제목은 <고3 그 반란의 시기>라나 뭐라나 ㅋㅋ

 

어쨌든 일기라는 것은 이처럼 지금의 내가, 지나간 나의 과거를 만나는 통로이자 하나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추억할 순 있지만, 과거의 나에게 절대 관여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서랍 속 낡은 일기장>이라는 작품은 이런 당연한 시간의 흐름을 역행한

작품이랄 수 있다. 물론 이런 소재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자주 접해왔기 때문에

어쩌면 크게 특별할 게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소설 속에서처럼 이런 상황을 상상하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펼쳐든 내 일기장에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적혀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실현이 된다면?

 

혹은 내일, 아주 가까운 미래의 일들이 일기에 기록되어 있고, 그 끝을 내가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그런 상상. 안타깝게도 <서랍 속 낡은 일기장>의 주인공은 일기의 끝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만약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비극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주인공 삶의

마지막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오늘 내일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결국 우리는 우리 삶의 끝을 알 순 없다.

 

미래의 내 삶이, 인생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하루도 ‘어쩌면 내일은 오늘보다 괜찮을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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