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평생 동안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 간다. 게다가 범죄 대상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될 일은 극도로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그 드문 경우의 수에 해당되는 소수의 사람이, 바로 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삶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 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 범영은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이모와 이모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당연히 이모의 딸인 세영과 함께 보낸 시간도 길었고, 그녀는 범영에게 사촌 동생이 아니라 친동생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녀가 이모의 집에 든 도둑에 의해 납치된 이후, 논산의 한 모텔에서 발견된다. 알몸으로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서 발견된 그녀의 온 몸에는 결박당한 흔적이 있었고, 강간 당한 상태였다. 이야기는 그렇게 발견된 세영을 만나러 가면서 시작된다.
한번도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이모가 울었고, 은행원으로 30년 가까이 살아왔던 터라 이성적인 태도를 덕목으로 삼던 이모부 마저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범영에게 말한다. 범인을 꼭 잡아 달라고. 그리고 그 새끼 꼭 사형선고 받게 해달라고. 우리 세영이는 이런 짓을 당할 만한 애가 아니라고.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애초에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해도 괜찮은 인간이란 없으니까. 아무 죄 없는 피해자는 평생을 아픈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될 거이다. 그러니 우리가 만약 피해자의 부모라면 극중 딸을 잃은 그들처럼, 범인에게 복수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여기서 작가는 주인공 범영을 경찰로 설정하고 있다. 게다가 세영이 발견되고 다음날, 세영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스너프 영상이 공개되면서, 결국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야말로 범영이 자신기 가진 모든 능력과 인맥을 다 동원하고, 경찰이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을 다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인 범영이 실제로 하는 것이 별로 없다. 원칙상 아는 사람이 얽혀 있는 수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휴직을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보고서와 자료도 이형사에게 뒤로 제공받고, 사건현장이 될 만한 곳이 세 곳으로 압축되었다는 소식도 이형사에게 연락을 받고 알게 된다. 거기다 휴직 중이라 수사 참여가 불가하지만, 두 번째 피해자가 그와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수사할 때 같이 동행할 수 있게 해주는 등 경찰들이 다 깔아 놓은 밥상에 범영이 그저 숟가락만 올려 놓는 느낌이다. 그런데다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로서의 플롯에만 집중하느라, 사건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감정이라든지, 동생을 잃고 직접적으로 수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인물의 일상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공감이나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초반의 아쉬움에 비해 이야기는 중반으로 갈수록 흡입력있게 전개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힘을 발휘한다. 물론 처음부터 수상해보였던 인물이 별다른 반전 없이 범인이라는 점은 속도감있는 전개에 비해 밋밋한 설정이었지만, 요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담으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던 것 같다. 대기업의 횡포와 여성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문제 그리고 오래 전부터 범죄 소설의 딜레마이기도 했던 사적인 복수의 허용에 대한 것까지 작가가 많은 것을 이 작품 속에 담으려고 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굳이 선정적인 묘사를 해가면서까지 (딱히 수위가 높은 묘사는 아니었지만) 스너프 영상을 보는 장면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고, 그런 영상을 찍으려는 범인의 심리가 그다지 설득력있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역시 사적인 복수와 그 방법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허무하게 마무리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작품이 올려진 게 작년 12월로 되어 있는데, 그 뒤로 한번도 수정을 안하신 것인지 여기저기 오타가 너무 많이 눈에 띄었다. 작가분께서 시간이 나실 때 오타는 좀 수정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가 굉장히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부분이 많으니 이것을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야기가 지루했다면 끝까지 읽을 수 없었을 텐데, 빠른 호흡과 속도감있는 전개는 분명 돋보이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