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의 탈을 쓴 드라마! 흥미롭다! 감상

대상작품: 아버지의 순대 (작가: 우명희,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8년 5월, 조회 37

최근에 김영탁 감독의 <곰탕>이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작품은 시간 여행이 가능한 미래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곰탕 맛을 배우기 위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요 플롯이었다. ‘곰탕 맛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죽을 만큼 위험하다는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작품의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서 음식이 소재로 등장하면 친근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보통 작품을 구매하거나 읽기 전에 작품소개를 먼저 보는 편인데, 그다지 친절하지 않는 설명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순대>라는 작품은 소개글에 아무런 설명없이 작품 속 순대를 만드는 과정을 한 토막 옮겨 놓은 게 다라 좀처럼 내용이 짐작되지 않았다. 우명희 작가의 기존 작품을 떠올려 보자면 뭔가 미스터리나 호러 쪽일 것 같은데, 제목에서 풍기는 어감이나 옮겨 놓은 내용으로는 가족 드라마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버려진 소시지나 햄으로 존슨 탕이라는 정체불명의 찌개를 만들어 파는 식당은 운영했다. 파리만 날리는 식당에 꼬박꼬박 찾아오던 젊은 여자가 새엄마가 된 후, 그녀의 제안으로 순대와 순댓국이 식당의 새로운 메뉴가 된다. 순대를 팔기 시작하면서 식당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손님들이 북적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거지 하나가 나타나 순대 먹으러 간다고 했던 동생이 사라졌다며 찾아 다닌다. 새 엄마는 친정에 갈 때마다 나에게 고기반찬을 챙겨 주고, 용돈도 주지만 나는 어쩐지 새 엄마가 쉽게 친해질 수가 없다.

부잣집 마나님처럼 세련된 젊은 여자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식당과 그녀에게 푹 빠져 아이는 좀처럼 신경쓰지 않는 아버지. 한번 순댓국을 맛 본 손님들은 가족은 물론 이종사촌의 팔촌까지 데리고 올 정도로 맛있다는 그것을 정작 나는 손도 대지 않는다. 똬리를 튼 뱀처럼, 꾸리어 싼 흑적색의 순대를 보면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일정하게 외출을 하는 새 엄마의 비밀은 무엇이며, 거지가 찾아 다니는 동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항상 파리만 날렸을 정도로 솜씨 없던 아버지가 만든 순대와 순댓국은 왜 그리 인기가 있는 것일까.

호기심에서 시작해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어가도록 만드는 작가의 실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물론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리뷰를 쓰자니, 뭔가 표현하다만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레 비슷한 소재를 가진 유명한 작품이 떠오른다. 물론 그 작품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비교적 작품 초반에 그 비밀들이 짐작 가능하기에, 이 이야기가 가진 매력은 반전이나 오싹함보다는 아버지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약간 싱거울 정도로 김빠지는 듯한 마무리 역시 작가의 의도였다면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순대’가 나에겐 ‘아버지의 순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호러와 미스터리를 배경으로 깔아 놓고, 사실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라 그런 기대를 배반당한 것에서 오는 어긋남이 이 작품의 반전이라면 반전일지도 모르겠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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