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체적인 내용 노출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그래도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은 대상 작품을 먼저 읽고 본 리뷰를 읽으시는 게 나을 듯 합니다.
** 이 리뷰는 해도연 작가님의 [뱀을 위한 변명], [안녕, 아킬레우스], [위대한 침묵], [마지막 마법사], [가시 위의 장미], [연출자 X] 총 6편의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한 리뷰입니다.
[연출자 X]를 리뷰 공모 중일 때 읽었습니다. 읽고서 좀 당황했어요. 그래서 왜 제가 당황스러운가, 저의 이 감정은 뭔가….계속 생각하고 생각해봤는데 약간 가닥이 잡히는 것도 같아서 이 리뷰를 씁니다. 헛소리 리뷰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요, 그래도 적어볼께요.
[연출자 X]의 내용은 김성미랑 멀쩡히 잘 사귀고 있는 듯해 보이는 주인공 하민에게 한 남자가 찾아와 그녀가 살인범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말같지 않은 얼토당토한 소리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돈도 준다고 하는데다 어찌어찌해서 얽히게 되지요. 그러면서 하나둘씩 비밀이 밝혀지고 전혀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됩니다. 밝혀지는 진실 앞에서 등장인물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고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반전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지요. 또 단편이란 분량의 특성상 결말에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을 선호하는 분들도 보이고요.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전혀 의외의 결말 선호란 일련의 흐름이 있는 듯 합니다. 해도연님의 작품 역시도 어느 정도는 이런 일종의 반전 선호에 위치해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막연한 짐작입니다만, 주인공이 뒷통수 맞는 구조를 선호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일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죠)이 결말에서 뒷통수를 맞는 비슷한 끝을 향해서 소설이 나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상상도 못한 뒷통수가 되기 위해서, 반전이란 결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주인공은 더 몰라야 해요. 몰랐다 아는게 충격이니까요. 결말이 충격적일수록 주인공의 내적 동기는 약해집니다. 휩쓸리는게 되고,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되고, 나아가 억울해야 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여섯 편의 단편 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주인공이 억울하게 휩쓸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혹은 별 거 아닌 행동이었는데 그 행동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해버린다는 느낌이요. 상당히 수동적입니다.
이게 제가 [연출자 X]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점이고요. 오늘 깨달은 점은 이 여섯 편의 소설에서, [마지막 마법사]는 좀 성격이 다릅니다만, 주인공이 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어디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것도 아니고요. 거의 종교적인 원죄와 심판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모든 소설 속 주인공이 모험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성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꼭 희망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겠지요. 저마다의 특색이 있을 것이고 또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단죄해야 하는가? 소설이 아주 확실하게 닫히는 느낌입니다. 이렇게까지 캐릭터를 파멸시켜야 하는가? 마치 단 한 번의 잘못으로 사람을 벼랑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까지 모질어야 하는가? 이 단어가 오늘 떠오르는 겁니다. 너무 모질다. 마치 벌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는 느낌까지 드는 겁니다. 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죄를 지은 이상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인 것처럼, 혹은 그렇게 절대적으로 운명지어진 게 인간이라는 체념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제가 해피엔딩 선호자라서 이렇게 느끼는건지. 이게 해도연 작가님 고유의 특색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캐릭터들이 터널에 갇혀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읽고 나면 뭐랄까요, 흠….외로워요. 더 잘 붕괴되고 더 잘 파멸되기 위해서, 그 결말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요. 모르겠어요, 오늘 제가 감정 상태가 불안정해서 유독 이렇게 느낀건지도요. 그렇다고 다음 소설에선 주인공 좀 죽이지(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말아주세요 하기도 그렇고요.
덧. 해도연님 소설에서 가끔 잠깐 나오지만, 이성 간의 잠자리 묘사가 나올 때가 있죠. 뭐랄까, 캐릭터 둘이 있다는 느낌을 줘요. 상대방 몸에 대고 혼자 자위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존재하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요. 미묘하게 특유의 생기랑 끈적끈적함이 있어요. 제가 좋아해요. 하지만 [연출자 X]에도 아주 잠깐 나오더군요. 와! 했는데 묘사가 끝났어요. 뭐 그랬다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