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멸망해도 닭강정은 먹고 가야지 공모 공모채택

대상작품: 뜨거운 동토 (작가: 샐러맨더,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8년 5월, 조회 156

제목이 좀 뜬금없다는 것 압니다. 그래도 제가 하고싶은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봤어요. 이 작품의 배경은 20세기 초반 핀란드입니다. 수많은 세력이 저마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요. 주인공 에리카도 이러한 세상의 흐름과 무관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흐름에 형향을 받는다고 해도, 모두의 삶이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을 리는 없겠죠. 세상이 멸망해도 닭강정을 먹으려 드는 저같은 사람도 있을 거고, 세상이 멸망해도 108배는 마저 끝내려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그러한 시대의 영향을 받는 에리카 개인의 인생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도중에 조금씩 시대상이 반영되고, 시대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에리카입니다. 시대가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작가는 “종이가 물을 먹듯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묘사해나가고 있죠.

 

그 시대에 ‘에리카 뉘캐넨’이라는 인물이 실재하였는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 나오는 모든 역사적 이벤트들이 실제 사실인지 또한 독자는 알 필요가 없고요. 다만 독자가 ‘사실인 것같다’고 느끼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소설이란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인듯 경험시켜주는 장치 중 하나이니까. 작가는 이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하는 것으로 독자가 느끼게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설정자료]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작품 외적으로 무언가 제시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다양한 사건과 여러 결사단체와 실재하는 지명과 그 외 여러가지 방법으로 작가는 독자를 설득합니다. 핀란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독자로 하여금 ‘이게 진짜 역사’라고 현혹하는 듯해요. 저 역시 핀란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까닭에 작가가 제시하는 인물과 사건과 단체가 어쩐지 사실일 것 같았거든요. 독자가 이렇게 느끼는 데에는 당연히 ‘디테일’이 한몫합니다.

디테일이란 곧 정보량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 외의 모든 정보를 지칭하죠. 가령 주인공이 편지를 쓴다는 내용에는 디테일이 적습니다. 디테일의 층위는 서서히 올라가거든요. 주인공이 만년필로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잉크와 철필로 편지를 쓸 수도 있고, 히말라야에서만 사는 고오급 양의 피를 벗겨 장인이 한땀한땀 관리하여 생산한 양피지에 편지를 쓰고 있는 걸수도 있죠.

철제 차륜이 궤도와 마찰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A5급 증기기관차가 에스포 철도역에 정차했다. 4-4-0식 차륜배치 특유의, 차체 높이에 비해 유독 높은 연돌에서 뜨거운 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배경에 아지랑이를 만들었다. 내릴 사람은 모두 내린 것을 차장이 확인한 뒤 열차는 경적소리를 두 번 내뱉고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기관차 연돌에서 석탄재 섞인 매캐한 잿빛 연기가 솟아올랐다. 기관차가 남기고 떠난 연기는 새하얗게 칠해진 역사 벽 때문에 더욱 도드라졌다. 세 칸 짜리 조그만 역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자 공기가 잠시 복작거렸다.

제가 디테일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굵게 칠하고 기울여두었습니다. 여기서 역사적 디테일을 찾으라면, “A5급” 증기기관차일 겁니다. 그 시절에 디젤 기관차가 없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모든 기관차는 증기기관차였죠. 그러나 A5급은? 아마 철덕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몇 없지 않을까 싶네요(A5급은 Finnish Steam Locomotive Class A5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핀란드의 증기기관차이다. 이름에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은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첫 증기기관차라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이 작품이 사실적으로 보이게끔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디테일에 사소한 불만 몇 가지가 있어요. 우선 이름이 그런데요, 작가는 모든 이름 뒤에 그 인물의 국가에서 사용한 표기법에 따라 철자를 적어두었습니다. 심지어는 지명까지도 말이죠!! 이미 인물의 이름과 지명이 충분히 이국적이었기에, 저는 이것이 불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커를 포칼로라고 표기하는 것 등등도 그러하였고요. 이 작품은 물론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읽는 것은 한국 사람이니까. 이렇게 많은 일반명사를 핀란드어로 표기한 것에 대해 저는 읽으면서도 조금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니까요.

 

핀란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흘러넘치는 핀란드 사랑을 그대로 작품에 쏟아부으신 것 같습니다. 그 사랑 조금만 절제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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