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어쩌면 신일지도 모르는 의령과 한때 뮤지션을 꿈꿨다가 꿈을 포기하고 관련 업계에서 늙어가는 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단편소설이 거의 끝나기 직전쯤에 밝혀진다.
중학교시절 함께 뮤지션을 의령은 가수 섭외를 받아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고, 가장 가까운 친구의 성공을 축하해줘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주인공 나는 그와의 연락을 피하기까지 한다.
필자는 주인공 나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스스로가 뮤지션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의령에 대한 질투와 원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작품 본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천재는 의도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을 망가뜨려 버리곤 한다.
주인공 나의 관점에선 그는 스스로 뮤지션의 길을 포기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의령에 의해 망가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억울하고 분통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원망의 대상이었던 의령은 환생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주인공 나 앞에 나타난다.
첫번째 인생에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고자, 두번째 인생에선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가수로 대뷔했으나 정작 그 때문에 자신이 원하던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그녀는 손쉽게 자살을 선택하고 세번째 길거리 인디 공연가로써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녀가 다시 주인공의 앞에 나타난 것은 어쩌면, 위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 위로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극중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대략, 인생은 영원히 무한한 윤회기회가 남아있으니 이번 생에서 못한 뮤지션의 꿈을 다음 생에선 이뤄보라던지, 뮤지션 그거 내가 직접 해봤는데 우리가 지향하던 음악세계랑은 전혀 안 맞아서 스스로 그만 둘 정도다 라던지, 그러니까 이 사소한 인생에 그리 목매달거나 신경쓸 필요 없다, 그런 말을 하러 온 게 아니었을까?
의령의 환생자 유나의 입을 빌려 말한 ‘무엇이었든 간에, 누구였든 간에’에 대한 표현과 묘사는 우매한 안목의 필자로서는 그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 억지로 ‘주인공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려 했다’고 추론해보긴 했지만, 진짜 작가가 그런 의도로 사용했다기엔 어색한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