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 히데오의 <얼굴>이라는 작품에서 용의자의 몽타주를 그리는 여경인 미즈노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심리까지 꿰뚫어보는 초능력을 지닌 걸로 나왔었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 등장했었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들이 귀에 들리곤 했는데, 사람들이 평소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안다면 이건 마냥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가 또 있을까. 물론 그것이 때로는 독이든 성배처럼 고통스러운 능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상대의 생각을 읽어 내거나, 과거를 볼 줄 안다거나 그런 능력이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서 종종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의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자가 등장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임수희는 사람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다.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반경 20미터 안쪽, 거리가 가까울수록 감정은 강하게 느껴진다. 단, 읽을 수 있는 건 오직 감정에 한정되어 있고, 생각이나 기억 같은 걸 읽는 건 불가능하다. ‘감정’ 이라니. 감정이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을 말한다. 즉, 실체가 애매모호하고, 변덕스러우며, 불안정하게 마련이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살인 사건을 조사한다는 설정 만으로도 이 작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영어 선생님이 학교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한다. 사고 직후에는 자살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영어 선생님은 자살을 할 어떤 이유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알고 봤더니 수학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이 결혼 얘기가 오가는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사람이 갑작스레 자살을 할 수 있을까.
수희는 사고 당일 만났던 영어 선생님에게서 슬픔, 불신, 불안의 감정이 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과 지인들로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기뻐하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사람도 많았던 데다 모두 슬퍼하는 얼굴이었고, 작게 나타난 기쁨은 곧장 다른 감정들에 묻혀버려서 누군지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 영어 선생님이 죽은 걸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영어는 실수로 떨어져서 죽은 게 아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했고, 누군가 영어가 죽은 걸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어. 나랑 같이 찾아줬으면 해. 영어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렇게 나와 수희는 나름의 조사를 시작한다. ‘미필적 고의’라는 제목에서 엿보이듯이 이 작품은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는 형식으로 추리 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나, 반전이나 트릭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누군가의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었다. 객관적이거나 명확할 수 없고,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읽어 내는 기술로 과연 이들은 영어 선생님의 죽음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인가.
짧은 이야기라 가벼운 학원 추리물처럼 읽히지만, 타인의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더 깊이 있게 연구한다면, 장편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감정을 읽어 낸다는 것은 추리물에서도, 연애물에서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설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