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 있는 입담과 괴력난신으로 엮은 연애기담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비인간적 연애기담 (작가: 번연, 작품정보)
리뷰어: 한정우기, 18년 5월, 조회 108

본 리뷰는 [도플갱어], [지유경 씨의 기묘한 이야기], [비인간적 연애기담]에 관한 글입니다.

 

혹시 도교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괴력난신은요?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공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다)”이라는 말도 있지만, 요즘은 가히 “괴력난신”의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여러 콘텐츠가 “괴력난신”을 다루고 있지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대로 다루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소재입니다. 자료도 많고 복잡한 데다가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더라구요. 저도 북두칠성군을 다룬 글을 써봤다가 세계관 구성이 너무 까다로워 중도포기를 하였지요. 사실 자료조사를 많이 해도 문제입니다. 정보의 전달량이 너무 많으면 재미가 반감이 되니까요.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하자니,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오고, 모티브만 차용하여 구성을 하자니, 원재료(?)가 아깝지요.

 

[도플갱어], [지유경 씨의 기묘한 이야기], [비인간적 연애기담]은 일종의 시리즈 작품입니다. [비인간적 연애기담]은 장편이고 나머지 두 글은 단편이지요. 세 작품 모두 비중이 다르긴 해도 스스로 태어난 뱀인 ‘지유경’이라는 인물과 그녀와 연을 맺은(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이정도로만 표현을..) ‘용’에 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편인 [비인간적 연애기담]의 경우 등장인물도 많고 신선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반도를 먹어서인지 지나치게 오래 산(?) 신과 선인들, 거기에 환생을 거듭한 ‘지유경’까지 더해져 이들의 인연이 꼬이고 또 꼬였지요.

바로 여기서 작가의 역량이 드러납니다.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재료를 놓고 작가가 어떤 칼로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나오니까요.

번연님이 사용한 칼은 재치 있는 ‘입담’입니다. (음, 글이니까 문담이나 글담이라고 해야 할까요)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하였지만 재미도 반감되지 않은, [비인간적 연애기담]의 경우, 작품 태그에 #개그가 등장할 정도로 재미있는 글이거든요.

(외전의 경우, 개그보다는 서정적 서사가 두드러지더군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인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와 비슷한 분위기였어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세계관을 설명하고 캐릭터의 면들을 묘사하였지요. 또한 재치 있는 입담이 일종의 실이 되어 조각들을 이어주기도 하였습니다. 파편처럼 쪼개진 전생과 현생,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술자의 입담을 통해 유려하게 연결이 되었지요.

위 세 작품은 괴력난신과 재치 있는 입담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만들어낸 멋진 동양 로맨스 판타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서술자의 등장이었답니다.

 

어쨌든 물론 환익은 안 그래도 귀하디귀한 후손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둘 생각은 없었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감히 삼십첩, 사십첩이라니요. 그 천하의 날강도 같은 놈의 X뿌리를 뽑아놓고 생각할 일입니다. 하지만 노인의 마음과는 다르게 생각이 번져나갔습니다. 덕분에 머릿속에서 점점 생각이 꼬이고, 엉키고, 끓어오르고 ― 그리하여 이를 보세요. 결국 노인이 같이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사실 입담이 잘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서술자의 개입 덕분이었지요. ‘개그’라는 게 웬만한 내공으로도 쉽지 않은 법이거든요. [비인간적 연애기담]의 경우 구어체를 사용하는 서술자가 직접 개입함으로써 작가의 능수능란한 입담을 드러낼 수 있었죠.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지만 [비인간적 연애기담]은 ‘도화극(道化劇)’의 구조와 비슷합니다. ‘도화소설’이라는 말도 있을까 해서 찾아봤더니 이런 말은 없네요.. ‘도화극’은 죄를 지어 인간계로 쫓겨났거나 때가 되어 선계로 올라가야하는(우화등선) 인간을 도화시키는 희곡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원 나라 시기만 해도 도화극이 주류 극 중 하나였지요. 보통 ‘도화극’에서 인간을 도화시키는, 혹은 깨달음을 주어 신선계로 데려가는 선인 혹은 신이 꼭 한 명씩은 등장을 하는데요. 신선의 등장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주인공이 같이 영물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죠. [비인간적 연애기담]의 **가 된 홍룡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보통은 도화시킬 사람과 인연이 있는 신선이 그 역할을 맡게 되거든요. 조상인 ‘황룡’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분을 나눈(?) ‘홍룡’만 하겠습니까.

보통 도화극에서는 ‘정’을 비워야하는 감정으로 보지만(우리나라 소설로 따지면 [구운몽]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인간적 연애기담] 및 신선계를 다룬 요즘 텍스트들은 ‘정’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판타지적 설정으로 도교를 차용했을 뿐 도교나 도가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니까요. [비인간적 연애기담]도 제목부터 드러내지 않습니까. “연애”를 다룬 글이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희곡 작가인 탕현조가 한 말 중에 “정이라는 것은 기원을 알 수는 없으나 한 번 주면 깊어지니, 산자도 죽게 만들고 죽은 자도 살게 할 수 있다. 살아있으나 죽게 할 수 없고, 죽었으나 다시 살릴 수 없다면 지극한 정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탕현조는 양명학 중에서도 좌파에 속하는 태주학파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명나라시기에 이런 말을 했으니, 당시에는 정말 급진좌파(?)로 분류되었겠지요. 탕현조의 ‘정’이 윤리나 명분을 중시하는 기존의 사상에 반(反)하는, 주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인 개념이었다면, 오늘날의 ‘정’은 그 자체가 판타지가 되지는 않았나라고 생각해봅니다. 주체적이기도 힘들고, 실천적이기도 힘드니까요. (왜냐고 물으신다면 지금 편집자의 추천에 올라있는 한켠님의 [나의 비혼식]을 읽어보십시오. 아니면 포인트는 좀 다르지만 번연님의 [지식의 신]도 좋구요.)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거기에 ‘정’까지 갖추는 것은 도를 닦아 신선이 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유경’ 씨를 부러워하느냐? 그건 또 아닌 것 같네요. 너무 험난한 사랑으로 보이거든요. 환상적인 ‘판타지’는 맞는데 제가 욕망하는 ‘판타지’는 아닌, 참 특이한 사랑 이야기지요. 그래서 제목이 연애“기담”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비인간적 연애기담]의 작품 태그 중 하나가 #장르파괴인데요. (다양한 것들이 버무려진 글이라 장르 파괴가 맞긴 합니다) 굳이 장르를 규정 짓는다면 위에 언급했던 동양 로맨스 판타지가 될 것 같네요.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력한 동양 판타지라는 점은 확실하구요. 로맨스를 다룬 건 맞는데요, 장밋빛의 로맨스는 아닐 수 있다는 점. 작가님의 맛깔난 입담 덕분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는 점.

요점 유의해서 보시면 더욱 더 재미있게 글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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