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처럼 쓴 장편소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시공간 왜곡 연구단 (작가: 노말시티,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8년 5월, 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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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부터 빠져들었다. 재미없어도 3화까지는 읽고 판단해야지―――라는 생각은 우려였다. 1화는 정말 대단했다. 평범한 일상 풍경을 이정도 호흡으로 길게 보여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흥미를 끄는 부분을 끝에 배치해놓는다.

흠, 이건 걱정할 필요 없겠군. 그냥 재밌게 읽으면 되겠어.

그리고 다행히 크게 지루해지는 것 없이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

 

장르는 [판타지, SF]이고, 작품소개는 [이상한 망상을 겪던 주인공이 시공간의 왜곡을 이용하여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모험담입니다.] 이라고 되어 있다. 또 태그는 [#시간여행 #타임리프 #비밀단체].

나는 이 설명만으로는 잘 감이 잡히지 않았던 터라 다 읽은 입장에서 작품 소개에 조금 설명을 덧붙여 보자면, 이 작품은 [현대를 배경으로 시간 관련 능력자들이 각자의 능력으로 비밀단체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능력자 배틀물은 아니다. 배틀이 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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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자: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는 있지만, 시간을 돌린 후에 자신이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

주시자: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지만, 왜곡자가 시간을 돌렸다는 걸 인식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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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장점이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는 거지만,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왜곡자와 주시자라는 설정을 놓고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비극을 막겠어!’ 이상으로 능력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모습]이다. 작품이 재밌는 것과 별개로 작가가 머리가 좋다는 걸 느낀 건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점은 1챕터부터 4챕터까지 꾸준히 유지된다. 작가는 계속 합리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시간 왜곡 능력을 통한 전략은 늘 흥미롭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작품은 1챕터 이후로 점점 재미가 없어져간다. 그래서 1챕터를 읽었을 때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추천해주기 굉장히 애매한 글이 되고 말았다. 작가의 역량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잠재력을 가진 작품이고 작가 분의 실력도 충분히 느꼈기에, 제발 더 좋은 작품을 써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일독하는 동안 기록해뒀던 이 글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적어본다.

 

1챕터.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흔히 ‘감초 같은 캐릭터’라는 말이 있는데, 이 작품은 모든 인물들이 다 감초 같은 인물들로만 되어 있다. 자상하지만 때론 엄격한 선생님 역할의 만호,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똑똑한 막내 유신, 그런 유신과 투닥거리는 활발하고 철없는 누나(형)역할의 태희…….

 

2챕터. 초반부에서 급작스럽게 일상물 분위기를 띠게 된다. 플롯 괴리가 심하다. 1챕터에서 긴장감을 끌어올린 다음에 배치하기에는 다소 느슨함이 큰 단락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시너지가 없다.

 

초반부에서는 넘길 수 있었던 부분이 후반부까지 개선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3챕터.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목적이 없다. 목적 대신 욕망이나 적극성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단지 다가오는 사건들에 휩쓸리다가 해결하고, 또 사건에 맞닥뜨리고 해결하고……의 반복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목적을 ‘일상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독자에게 충분히 그 일상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독자가 주인공이 그 일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공감할 수가 없다. 이것은 문장 몇 마디, 심리묘사 몇 줄 추가한다고 충족되는 조건이 아니다. 플롯 자체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타임리프물에서 주인공의 목적은 ‘과거를 바꾸는 것’이다. 사고로 죽었던 아내를 사고로부터 구한다거나, 큰 실패를 겪고 자살하려던 사람이 과거로 가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다거나 등등. 왜냐하면 ‘과거를 바꾸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만큼 타임리프라는 장르와 밀접한 목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 왜곡 연구단]은 그 목적을 전체 플롯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할 다른 강렬한 동기를 마련했어야 했다.)

 

4챕터. 2챕터 때부터 느낀 사항이지만, 문제로 부각된 건 3, 4챕터에서였다.

우선 최종보스의 존재가 너무 일찍 나타났다. ‘아,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끝나겠구나.’ 라는 게 절반 부근에서 확신 시 되고, 이후 별다른 새로운 적도, 미스터리도 없다. 태그에 ‘비밀단체’라고 적어놓은 것에 비하면 비밀이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더욱 안 좋은 점은, 악역이 사실상 아무런 매력도 없다는 점이다. 드러난 정체를 보라. 너무도 얄팍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고작 이런 인물에게 그렇게 고생을 했다니.

인물들도 그렇다. 초반에 드러난 인물들로만 극을 이끌어간다. 이건 카드 게임으로 치자면 새 카드를 뽑지 않고 처음부터 들고 있던 패로만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제점을 꽤 많이 꼽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 읽을 정도의 재미는 부정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나 혼자 먹기에는 맛있는데 남에게 추천해주기에는 조금 아쉬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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