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이름의 저승길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한 여름 밤의 꿈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18년 4월, 조회 94

* 언제나 그렇듯 제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고, 기본적으로 저는 스포일러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리뷰를 보시기 전 <한 여름 밤의 꿈>을 꼭 읽고 와주셨으면 좋겠네요.

전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싶으니까 좌표는 여기. *

 

 

1.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게이입니다.

그는 같은 대학 동기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W의 부탁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갑니다.

남몰래 W를 좋아하는 나는 내심 마음이 두근두근 설렙니다만, 그를 밎이한 건 끔찍한 일가족 살해현장이지요.

W 또한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그 사실을 가족에게 들킨 뒤 후유증으로 좋아하는 운동을 더 이상 즐기기 힘들게 되었을 정도로 구타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들키자 W의 아버지는 칼을 들고 왔지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하는 법. W는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를 죽이고 만 것입니다. 나는 W와 함께 그의 가족을 암매장합니다.

처음에는 잘 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시신은 들키지 않았고 나와 W는 고등학교 때부터 감추고 있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요?

W는 죽은 누나와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온다고 말하며 점점 광기에 빠져듭니다.

정말로 귀신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죄책감에 빠져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일까요?

주인공은 대체 무엇을 감춘 것일까요?

 

2.

최근 닷페이스라는 유투브 채널에는 다음과 같은 영상이 올라옵니다.

구원자: Save Me 예고편 (보시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세요. 심정적으로 괴롭습니다.)

링크 타고 날아가기 귀찮으신 분을 위해서 저 영상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성소수자 전환 치료.

즉, 한 사람의 성적 지향을 신앙의 힘으로 바꾸어주겠다는 뜻입니다.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만들어주겠다면서 돈을 받고 ‘치유’를 행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그것부터 매우 섬뜩합니다만…….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그 전환 치료가 가족의 적극적 동의와 협조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 아닐까요?

구원자: Save Me 1편에서 제가 얼굴을 굳히고 화면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제일 심정적으로 역겹고 괴로웠던 부분은 다음과 같네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과 함께 남자끼리 어디 좀 가자고 합니다.

노래방인가요?

삐빅! 룸살롱입니다.

룸살롱에서 여자를 끼고 아버지가 말합니다.

나도 친구들 많고 친구들 참 좋아해.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친구를 좋아하는 거랑 이성 간의 사랑은 달라.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이자 종속물로만 보는 마음가짐과 하이퍼리얼리즘 화가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완벽한 호모포비아, 그리고 남성이 이상할 정도로 사회에서 성적 자유를 누리는 복잡한 사회가 만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크아!

저는 그만 영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깊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다음은 너무나도 중대한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가립니다.

이게 너무 과도한 설정 같다고요?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게 룸살롱에서 동성애자 아들에게 여자 붙여주고 띵가띵가 놀면서 “아들~ 나도 고등학교 친구들 많고 다 좋아해~. 그런데 이성 간의 사랑은 그런 거와 달라~.”라고 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다른가? 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데요.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이자 종속물로 보기, 하이퍼리얼리즘 화가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생생한 호모포비아, 사회가 허락한 남성의 즐길 권리.

아들 데리고 여자 끼고 놀면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면, 아그책님이 쓰신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4.

작중에서는 죽은 자의 몸에 닿으면 저승길이 열린다고 하였죠.

저는 과연 저승길이 더 무서운 건지, 현실이 더 무서운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야 저승길은 내가 잘 모르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하였으며 아마 죽는 순간에도 제대로 모를 곳이니까 두렵기는 하죠. 하지만 현실은요?

잘 만든 호러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현실이 그만큼의 논리와 체계와 미학을 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씀드릴까요? 논리와 체계와 미학이 있으면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을 우리 뇌에서 조립해 구축한 물건이지요.

그만큼 이상과는 다른 게 현실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그래서 현실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도 봅니다.

천부인권이란 얼마나 허망한 개념인지요.

모든 사람에게 태어날 때부터 인권이 있다고 말하면서, 흔히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너는 나와 성별이 다르네? 사람 아니다.”

“너는 동성애자네? 사람 아니다.”

“너는 양성애자네? 사람 아니다.”

“너는 정신질환이 있네? 사람 아니다.”

“너는 외국인이네? 사람 아니다.”

“너는 청소년이네? 사람 아니다.”

“너는 피부색이 다르네? 사람 아니다.”

다 적자니 시간이 없어서 생략합니다만, 소수자이면 소수자일수록 ‘너는 나와 다르니 인간이 아닐 것이야.’라는 차별은 더 깊습니다.

W는 이러한 현실에 맞서 폭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합니다. 주인공도 결국에는 W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합니다.

저는 그 무엇보다 이 대사가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는 이성애자가 아냐. 씨발, 나는 남자친구도 있어, 동성애자라고.”

결국 W도 주인공도 폭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증명하고 입증했습니다.

두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간 게, 둘 다 특수 체질이라 다른 사람보다 테스토스테론 같은 게 더 많이 분비되어 보다 더 공격성이 높은… 뭐 이런 개인의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사정일까요?

아니면 제가 위에서 언급한 더 깊은 차별일까요?

 

 

+

여담입니다만 리뷰를 빌어 다음에 이런 소설 써주십사 감히 말씀드린다면……

마이너리티 사이에서 나오는 차별을 한번 써 주셨으면 합니다. 소수자도 결국에는 사람이고, 사람은 언제나 선할 리 없어요.

파 보면 무궁무진하게 나올 것이라 확신하는데, 그것을 아그책 작가님의 방식으로 보고 싶거든요.

아그책 작가님. 제가 이렇게 아무말을 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 과감하게 제 아이디어를 버리시기.

우리만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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