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남들의 구세계에 살고 있는 여자가 본 <그녀들의 신세계> 비평

대상작품: 그녀들의 신세계 (작가: 용준치킨사우루스, 작품정보)
리뷰어: 리치오렌지, 18년 4월, 조회 1374

“문학에는 남자와 여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있겠죠.”

라고 주장하는 남성은, 매우 높은 확률로 저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자기 글을 통해 증명하고 맙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그 사실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쁜 습관이 있지요. 일단 작품을 끝까지 읽어본 뒤에 말하는 것은 작가님 또한 바라시던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읽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 방지 조치를 딱히 하지 않은 글이라는 점을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여성 작가에 대한 여성 독자들의 명확한 선호가 생긴 뒤에야 겨우 ‘글쓴이의 성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지점에 도달해, 자신의 글이 성별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는 남성들이 쓰는 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만 먼저 말해보자면 여성 인물의 행동이나 내면에 대한 묘사가 너무 엉성해서 좀 웃길 지경이라는 점이죠. 우습다는 감정보다 불쾌감을 더 강하게 느낄 때도 있긴 하지만 일단은 웃깁니다. <그녀들의 신세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글에서 그 글을 쓴 남성의 모습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비쳐 보이거나, 그 남성의 얄팍한 여성관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해지거나, 해당 여성 인물이 너무 이상한 행동(또는 생각)을 해서 그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때문이겠죠. 다 연결되는 이야기이기에 저 중 한 가지 경우에만 해당하기는 어렵기도 합니다.

 

서론이 길었으니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이 글의 화자인 여성 역시도 딱히 실존하는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무턱대고 남자들을 몰아대는 사람들’의 논리(라고 생각하는 것)를 이리저리 기워서 만든 허수아비 같은 인물이니 그럴 법도 합니다. 보고 있자니 어쩐지 콜라주 기법이 떠오르더군요. 이게 정말로 잡지를 잘라 붙여서 쓴 소설이라면 그 잡지의 제목은 <맘 카페>였을지도요.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논리는 거의 전적으로 맘 카페에 기대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맘 카페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맘 카페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신가요? 그 단어가 지나치게 자주 나온다는 인상을 받아서 직접 세어보니 본문 전체에 ‘맘 카페’라는 단어가 다섯 번쯤 나오고, ‘이상한 카페’, ‘그 사이트’라는 식으로 표현된 경우를 합치면 그보다 더 많더군요. 후반으로 가면 “맘 카페 경력 5년 차의 힘을 보여주겠다.” 같은 비범한 문장도 나옵니다만, 이야기를 순서대로 하기 위해서 일단 이 문제는 접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주인공은 멋모르던 시절에 덜컥 임신했던 아이를 낙태한 이후에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 사건에 대한 작중의 서술이 여러모로 이상해서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최대한 압축해보자면 주인공은 대체 임신 몇 주차에 임신중절을 한 건가요? “다은이한테 죽었다고 말하지 마. 애초에 세포였을 뿐이라고.”는 저 문장 안에서도 일관성이 없는 것 같고, 저렇게 이름까지 미리 지어 둔 아이인데 “그이는 착상에 실패한 줄 알고 있다.”는 서술과 주인공이 임신한 이후로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서술이 차례로 뒤따르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적으로 유산한 줄 알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을 잘못 말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덜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주인공은 어떤지 몰라도 작가님에게는 맘 카페 경력 5년 차의 내공이 없어 보인달까요.

 

어쨌든 주인공의 내면 서술은 계속 갈팡질팡합니다. 기본적으로 성차별 이슈에 민감하며 남자들에게 적의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난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요리하는 것을 배웠고 미래의 남편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싶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같은 서술이 툭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저런 인물이라면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시절을 조금만 창피해하거나 그 시절을 떠올릴 때 웃음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겨우 이런 것에 너무 놀라지는 말라는 것처럼, 전체 분량의 절반보다 조금 이른 지점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주인공과 주인공 남편의 몸이 서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죠. (남성 작가의 창작물에서 여자와 남자의 몸이 서로 바뀌면 가슴과 다리 사이를 더듬어보는 장면이 꼭 들어가던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어쨌든 난데없이 몸이 바뀌는 바람에 주인공은 남편 대신 그 몸을 가지고 회사에 출근합니다.

 

몸 바뀌는 건 제가 미처 예상을 못 했지만 이렇게 되면 다음 전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물론 주인공에게 남성의 고충을 체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디테일은 여전히 계속 이상합니다. 남편 상사가 “각진 얼굴에 큰 매부리코를 가진 전형적인 한국 남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거나 하는 거 말이에요. 전형적인 한국 남자가 각진 얼굴에 큰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하지만 이런 걸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면 리뷰를 끝낼 수가 없기 때문에 또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골반에 딱 달라붙는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사원’ 3명을 본 주인공은 그것이 ‘전형적인 남성들의 성적 만족을 위한 코르셋’이기에 분개하며, 그들에게 같은 여자로서 따끔하게 한마디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주인공이 여전히 남편 몸속에 들어있다는 점이겠지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은 그 사실을 자기 좋을 대로 잊어버렸다 기억했다 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경우에는 비일관적인 인물 자체를 욕하기보다 그렇게 써 놓은 작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남편의 몸을 입은 주인공이 이렇게 말합니다.

 

“별건 아니고요. 치마랑 옷 꼴이 그게 뭡니까? 그런 옷차림들이 남성들의 성적 만족을 위한 거라고요. 다음부터 넓고 긴 치마를 입고 오세요.”

 

작중 세계의 맘 카페에서는 아직 맨스플레인 이슈가 지나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장면 이후에도 주인공은 남편의 몸을 입은 상태에서 자꾸 저 젊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 듭니다. 맘 카페 경력 5년 차의 내공을 자랑하는 사람인데도 그런다는 것은 역시 맨스플레인이 뭔지 몰라서 그러는 거겠죠.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이 원형인 게 분명한 <00년생 김지민>이라는 책이 언급되는 걸 보면 시간상 그걸 모른다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해요. 괜히 빙빙 돌아갈 것 없이 작가님이 그걸 모르셔서 저렇게 됐다는 게 해답이겠지만요.

 

게다가 ‘딱 달라붙는 짧은 치마’ 대신 ‘넓고 긴 치마’를 입으라니, 이래서야 주인공이 ‘코르셋 벗기’를 장려하는 페미니스트인지 아니면 줄자 들고 미니스커트 길이 재는 성 엄숙주의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코르셋 여사원들’에게 저런 소리를 하다가 그건 성희롱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전반적으로 글이 너무 웃겨서 진지하게 화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도 그럴 만한 부분이 있다면 (옆 부서에서 여사원한테 예쁘다고 칭찬했다가 성희롱으로 잘린 놈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위험한데 어떻게 여사원이랑 같이 일해요?” 같은 대사를 영혼은 여성인 인물의 입에서 나오게 했다는 점을 꼽고 싶군요. 작가님이 저 대사 너무 써보고 싶어서 자제를 못 하신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오래 화나지도 않지만요.

 

리뷰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고 있기에 얼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남성의 몸으로 회사에 출근했으면 퇴근 전에 생수통은 한 번 갈아봐야겠지요. 작중 세계에서는 대기업 사무직의 50%는 여자로 뽑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팀장(주인공 남편의 직급입니다.) 밑의 직원들은 다 여자뿐인지 팀장이 생수통을 갈고 있습니다. 등장하거나 언급된 동료나 상사는 죄다 남성이기도 했던 걸 보면 고위직은 남자로 채우면서 낮은 직급에 여자 직원을 몰아놓아서 비율만 채우고 생색내는 회사인가 싶네요. 제가 주인공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거나 분노했을 것 같은데, 주인공은 생수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생수통이 너무 무거워서 혼이 나간 걸까요. 남편이 평소에 운동을 별로 안 했는지 무거워서 쩔쩔매더라고요.

 

이게 벌써 4천 자나 되어버려서 당혹스러우니 회식 장면으로 넘어가 봅니다. “맘 카페 경력 5년 차의 힘을 보여주겠다.”가 바로 여기에 나옵니다. 여사원이 “무슨 남자가 술도 못 마셔요?”라고 말하자 “그렇게 나보고 성차별로 뭐라 한 주제에 자기도 성차별을 해? 맘 카페 경력 5년 차의 힘을 보여주겠다.” 이렇게 된 거였거든요. 그런데 생수통 가는 장면까지는 “물론 남자라면 해야 하는 일이긴 한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저러니 좀 당황스럽습니다. 생수통 갈아보고 나니 생각이 바뀐 걸까요?

 

어쨌든 맘 카페 경력 5년 차를 자랑하는 주인공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페미니스트가 건방지게 덤비는 꼴을 참을 수 없습니다. ‘한남 오빠나 00년생 김지민’을 3번이나 읽었다고도 하는군요. 주인공은 어떤지 몰라도 작가님은 저 책들의 원본을 한 번도 안 읽어보신 게 아닌가 싶은데, 둘 다 소설이어서 “기울어진 운동장 몰라요? 모르면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고 말하면서 추천할 책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 저로서는 조금 의아해서 그렇습니다. 이 소설에 있는 다른 문제들보다는 덜 심각하지만 어쨌든 그래요.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주인공이 나이 서열과 연차, 책을 읽은 횟수 같은 것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일일이 말하자면 끝이 없으니 적당히 넘어가겠습니다.

 

주인공이 ‘여사원’과의 말싸움에서 참패하고 술 취해서 필름이 끊겨 집으로 업혀 간 뒤에, 마지막 파트에서는 이 소설의 주제문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그이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던 거지? 눈물이 쏟아진다. 그이도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위로는 못 해줄망정 페미니즘을 들먹이며 그를 괴롭혔다.” 여기서 민망한 꼴은 이미 볼 만큼 다 봤다고 생각하는데도 새삼스럽게 너무 민망해서 몸이 뒤틀릴 정도로 노골적인 주제문이죠.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는데도 자기 몸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인공이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소설은 끝나는데, 이 소설이 대체 누구를 설득할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기기는 웃기지만 딱히 흐름을 역행하는 새로운 글인지도 모르겠고요. 이런 주장 자체는 아무 남초 커뮤니티나 들어가도 많잖아요? 그걸 굳이 소설로 써서 브릿G에 올릴 때 생기는 의의는, 글쎄요. 누가 굳이 5천 자짜리 리뷰를 써 준다는 것 정도일까요.

 

어쨌든 글을 마치기 전에 자유게시판에 올리셨던 글에 대한 답변을 해드리자면,

  1. 페미니즘은 ‘이것이 유행하니 나는 반대로 써 보겠다’라고 할 만한 소재나 장르가 아닙니다. 한국 남자가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글을 쓰는 게 딱히 남류 문학계의 대세를 거스르는 일도 아닌 것 같고요.
  2. 안티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이런 소설을 안 씁니다.
  3. 의도하신 바는 아니겠지만 이 글은 ‘문학에 남자와 여자는 없다.’는 말의 훌륭한 반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그저 좋은 글과 나쁜 글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더라도 이 글은 나쁜 글입니다. 어째서인지는 위에서 설명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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