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여성에게 적합한 직업이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여자에게 적합한 직업 (작가: Victoria, 작품정보)
리뷰어: 한정우기, 18년 4월, 조회 245

*[여자에게 적합한 직업]은 살인사건을 기반으로 한 추리/스릴러 소설입니다.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없지만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스포일이 될 만한 부분이 언급됩니다. 될 수 있으면 작품을 먼저 보신 뒤 리뷰를 읽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것은 [송대 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이라는 책입니다. 중국 여성사를 연구하는 워싱턴대학의 이브리교수가 쓴 책이지요. 학술 서적답게 500page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단편적 사료들이 많이 언급된 책인데, 도저히 정독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필요한 부분만 선별(?)해 읽고 있지요. 다음은 이브리 교수가 책의 결론 파트에서 기술한 내용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 송대 여성의 삶을 연구하는 데 접근했던 방법은 세 가지 목적에 맞춘 것이다. 나는 송대 여성들이 생활을 영위해 온 그 시대의 주위환경과 분위기의 총체적인 배경이 지니고 있는 복잡한 양상을 표출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이미지, 생각, 관점, 관습을 포괄하는 하나의 문화적인 틀로서 결혼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나는 여성을 남자들에 의한 행위의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자기네들이 살았던 여건을 개척하고, 판단하고 또한 그 여건에 융통성 있게 맞서 대응해 왔던 능동적인 주체자로서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했다. 나는 송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일어났던 총체적인 역사 속에 여성의 역사를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그리고 송대의 여성에게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당대의 다른 변화들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았다.

 

P.B.이브리, 『송대 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 한국학술정보, 2009, p.417

 

책에는 확실히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당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 한 자는 남성입니다.) 혼인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데릴사위를 얻은 사람도 있으며, 과부가 되어 재가한 사람도 있고, 이혼을 당해 소송을 제기한 사람도 있고, 재산을 탐내는 친척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지요. 당시 사회의 모습과 함께 그 속에 위치한 여성들의 모습을 조명해보고 그 목소리를 복원해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성에게 매우 불합리한 사회인 송나라 시기에도 “자기네들이 살았던 여건을 개척하고, 판단하고 또한 그 여건에 융통성 있게 맞서 대응해 왔던 능동적인 주체자”(여성)가 항상 존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자에게 적합한 직업]은 저에게 [송대 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과 비슷한 글이었습니다. 물론 선명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전자는 소설이고 후자는 학술서라는 점이지요. [여자에게 적합한 직업]의 카테고리는 ‘추리/스릴러’ 그리고 ‘역사’입니다. 태그도 마찬가지지요. 기본적으로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의 흥미를 끌면서 당시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 자리 잡은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입니다. 사적자료를 기반으로 글을 기술한 학술서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글이지요.

 

[여자에게 적합한 직업]에 나타나는 여성은 주인공인 만영, 조씨 부인과 윤씨 부인, 권씨 부인, 위트비 부인과 뒤랑 부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된 캐릭터는 만영과 조씨부인 그리고 윤씨 부인입니다.

주인공인 만영은 쉽게 말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입니다. 소위 개화된 여성이지요.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교육을 받았으며 혼인을 거부하는 신여성입니다. 이제껏 일해 온 에드워드 클럽이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은 만영은 자신에게 들어온 수상한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지요. 만영은 전통을 부정하고 사회의 변화를 꿈꾸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여성입니다. 만영에게서 드러나는 무력감은 이를 나타내지요. 뭐, 만영뿐만 아니라 모더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정서지요. 다만 만영이 살아가는 구한말 시기가 모더니스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보다 좀 더 이른 시기이기에, 만영이 좀 더 깨어있는 감각을 가지지 않았나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동양인 여성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반면 조씨 부인은 만영이 거부하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화려한 방 안에서 산호비녀에 청금석 쌍가락지를 끼고 살아가는 여성입니다. 조씨의 남편은 계양군 대감 댁의 양자인 이상현입니다. 그녀의 남편인 이상현의 죽음을 캐내는 것이 만영의 업무이지요. 조씨 부인이 계양군 대감 댁이라는 울타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그 집의 양자인 이상현과의 혼인 덕분이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그 울타리에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뱃속에 들어있는 아기가 만약 아들이 아니라면, 금이 간 울타리마저도 무너질 판국이지요.

마지막으로 윤씨 부인은 죽은 이상현의 절친인 정유택의 부인입니다. 남편이 관직에 올랐으나 적은 봉급으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자수를 놓으며 생계를 이끌어가는 여성입니다. 만영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여공(女功)에 능한 여성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세 여성 모두 “능동적인 주체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드러나는 만영은 둘째 치고, 조씨 부인과 윤씨 부인도 마찬가지지요.

 

조씨 부인이 왜 “능동적인 주체자”인지는 글의 결말과 관련이 있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조씨 부인은 만영보다도 더 주체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능동적인 주체자”입니다. 만영이 혼인을 거부하고 직업을 통해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면, 조씨 부인의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내에서 훨씬 더 현실적이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윤씨 부인의 경우, 원래 작품에서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해석한 걸 수도 있지만, 위의 두 여성만큼이나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입니다. 만영은 침선과 같은 ‘여공’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도 만영의 눈에 비치는 ‘여공’이란 전근대적인 여성의 운명이자 숙명과도 같은, 개혁해야할 대상으로 보이겠지요. 마치 혼인한 여성이 꽂는 ‘비녀’처럼요. 초가집 한 채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싼 ‘비녀’를 선물 받은 만영이 씁쓸하게 웃은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실제로 ‘여공’은 여성을 사회로 연결시킨, 특히 경제 분야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활동입니다. [송대 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에서도 여러 챕터를 통해 언급하는 부분이지요. 여성의 부업활동을 통해 가정은 보다 탄력적인 자금운용(뭔가 거창해 보이는 군요)이 가능해졌고, 덕분에 가정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도 올라갔지요. 당나라나 송나라 때 만연했던 사회현상인 ‘데릴사위’도 이와 연결시켜 해석을 하더군요. (경제력을 지닌 딸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여성의 도리로 식구들의 옷을 직접 지어 입히는 것과 생계를 위해 그것을 내다 파는 것은 전혀 다른 노동의 형태니까요.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여공’을 하며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확실히 여성에게만 씌워진 노동의 굴레지요. 하지만 윤씨 부인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양반 댁 부인이지만 윤씨 부인의 실력은 이미 장인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윤씨 부인의 자수품은 도성의 양반 댁에서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원하고 있으니까요.

 

굳이 오늘날의 명칭으로 명명해본다면, 만영은 ‘골드미스’, 조씨 부인은 ‘가정주부’, 윤씨 부인은 ‘맞벌이(혹은 여성가장)’에 속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지만, 구한말 사회에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이 간극을 없애기 위해 작가님도 작품 속에서 시종일관 당시 사회상과 가치관을 드러냈구요.

 

‘여자에게 적합한 직업’은 과연 무엇일까요. ‘직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이 세 명의 여성은 모두 자신만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직업을 추구하는 만영, 기존의 사회 시스템 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찾아가는 조씨 부인([송대 중국여성의 결혼과 생활]에서도 나오는 부분인데요. 당시 여성의 역할은 가정의 관리자였습니다. 상류층의 경우에는요. 부잣집에 경우 몇 백 명에 달하는 인부들과 엄청난 양의 집안 살림을 관리해야했으니까요. 오너는 아니더라도 CEO 정도는 되겠네요.), 여공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윤씨 부인.

 

각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상대방의 ‘직업’이 맘에 들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엄연한 ‘직업’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송나라 시기의 여성이 하위주체로 살아가며 탄압을 받았다고 해서 그 시기 여성들은 모두 “능동적인 주체자”가 아니었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혹시 아직 글을 읽지 않으셨다면 어서 가서 읽어보세요. 디테일하고 풍부한 시대적 고증을 기반으로 당시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려내고자 한, 그와 동시에 추리/스릴러의 매력을 잘 살려낸 재미있는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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