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산다
꼭 과업이 있거나 약속이 끊이지 않아서는 아니다
즐길 것 많고 볼 것 많고 읽을 것, 들을 것 등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여서가 아닐까 싶다
핑계같겠지만 기껏 맘잡고 ‘뭐라도 좀 읽어볼까’ 했다가도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온갖 대상에 정신을 빼앗긴다
비단 이런 증상을 경험하는 게 나만은 아닐거라 생각해본다
브릿G를 알게 되어 나에게 좋은 점은, 수많은 중단편에게로의 접근성을 높여주었다는 것이다
까딱하면 읽는 행위를 방해받던 내게 브릿G는 읽는 행위를 더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개체이다
물론, 독서에 온 힘을 다하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의 독서량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적극 읽기(누군가에겐 쓰기)를 장려해주는 사이트가 있음에도, 여전히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생각이 든다
잠시 돌아서면 글을 읽던 것을 까맣게 잊곤 한다
괜찮은, 잘 쓴, 매력있는 글을 접하고픈 욕망은 분명 있으나 여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이렇게, 얄팍한 단계에서 찰랑대는 에너지를 적절히 나눠 쓰느라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늦은 나이 신드롬>은 몇 번이고 글의 제목과 내용, 심지어는 그 안의 문장을 더듬고 떠올리며 되새김질하게 만든 작품이다
원고지 1백여매를 넘기는 지라 길이감이 적당히 있어 단번에 읽지는 못했는데, 길을 걷다 문득 글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음을 깨닫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중간에 글을 읽다 끊겼는데 뒷이야기가 자꾸만 궁금해지고 앞이야기를 되새김질하게 되더란 것
문체는 다소 덤덤하여 확 꽂히는 맛은 없는 편이다
그러나 그 덤덤한 말투로 늘어놓는 문장 하나 하나가 머릿속에 박히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생각과 고민에 고개를 끄덕이며 몰입하게 만든다
“31살에 대학원 가면 너무 늦은 걸까요?”
“~하기에 나는 혹시 늦은 나이가 아닐까?” 라는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해본 적도 있고,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유형의 물음이다
31살의 민규는 곧 32살이 되는 대학원생으로 근래 특정한 연구주제로 여러 인터뷰이들에 나이와 관련한, 위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점차 민규는 그 질문의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고 점차 거기에 집착하게 되며, 나중에는 스스로에 대한 깊은 불신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십대 후반이었던 어느 여성 인터뷰이가 달라진 모습으로 민규를 마주한다
얼굴빛은 한층 밝아졌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신분증 상의 나이는 원래의 것과 많은 차이가 나는 숫자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이 부분 보고서 마음의 변화가 신체에도 영향을 주더라, 그래서 이제 여자가 신분증 위조하고 자기 멋대로 새 삶을 산다 뭐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더 읽다 보니 그런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즈음부터 조금 무난한 줄로만 알았던 이야기가 이채를 띠기 시작한다
민규의 작은 고민은 어느새 단단한 돌덩어리가 되어 몸에 박히고, 살을 좀먹고, 곰팡이가 끼어 썩어가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민규가 집중한 것은 자기 행동의 합리화였다
어느 순간까진 그래, 그럴 수 있지 했던 나도 점차 민규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독자인 나는 내 일이 아니기에 어? 싶은 부분에서 적당히 발을 뺄 수 있었으나 민규는 행위의 당사자이자 변화를 경험중인 본인이다
발을 뺄 수 있는 타이밍은, 지나도 한참 전에 지나 버렸다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섭리가 만나 이렇게 기묘한 느낌으로 재창조될 수 있으며, 사회 전반에 깊숙하게 자리잡아 누구라도 벗어나기 힘들 거대한 질문을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작가의 글재주에 새삼 감탄했다
재미있었다
지금 내 나이가 뭔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일 수 있을까?
xx을 하기에 xx세는 늦은 나이일까?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무언가를 되돌리기엔 처절하리만치 늦었을 수도 있음을 작가는 인물을 통해 말해준다
결말에 이르러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작가가 상당히 고무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가 역설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어딘가 찜찜해 견딜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진미가 아닌가 싶다
말끔하고 개운한 뒷맛은 아니지만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만 같은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