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고양이와 견습 사제의 모험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검은 도둑 고양이 (작가: 이지훈, 작품정보)
리뷰어: 코르닉스, 18년 3월, 조회 61

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검은 도둑 고양이>는 이른바 전통적인 판타지에 해당하는 소설입니다. 마법과 검이 공존하는 세계. 산골 마을의 사냥꾼인 릿은 고향을 불태운 ‘황혼과 여명’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세계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서, 기사, 마법사, 사제와 함께 모험을 떠납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모험의 시작부터 릿이 검은 고양이가 된 정도죠. 제목과 어울립니다.

그렇지만 릿이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파티의 마스코트이자,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고 작품 소개에서 마치 주인공처럼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주인공은 릿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제인 마이아입니다. 작품 내에서 릿은 조력자에 가깝습니다.

물론 전개하다보니 주인공과 동료의 위치가 바뀌는 이야기는 의외로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우스갯소리로 ‘포프의 대모험’이라고 불리는 <타이의 대모험>입니다. 분명 타이는 주인공이었지만 타이의 정신적 성장이 너무 빠른 나머지, 후반에 가면 동료 마법사인 포프의 인간적인 성장에 몰입하고 응원하는 독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검은 도둑 고양이>는 전개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지는 않습니다. 릿은 처음부터 최근 화인 12화까지 조력자 포지션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성격도 완성되어 있고 도둑 능력은 4년 간의 도둑 고양이 생활로 진작에 달묘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이 부분은 재미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로 변한 예언 속 구세주라는 캐릭터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 결정은 어려워 보였거든요. 이 정도로 깔끔하게 마이아를 밀어주니 충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이아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주인공의 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습니다. 작품의 시작부터 등장할 뿐만 아니라 오지랖이 넓으면서 올바른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능력도 쓸모없다고 타박 당하지만 잠재력은 충분히 보입니다. 적의 간부에게 스승이 죽는 비극을 겪었기에 동기도 뚜렷합니다. 시점은 물론 내적 성장도 주로 마이야 위주로 이루어집니다. 조금 답답한 면도 있지만, 요즘에 보기 드문 소설이 진행되면서 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한번은 예언자가 정말 성장시키고 싶어하는 인물은 릿이 아니라 마이야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정도로요.

 

릿과 마이아처럼 소설은 조금 개성적인 걸 제외하면 요즘에는 보기 드문 왕도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느긋하지만 안정적이고 탄탄하게 전개됩니다. 12화까지 진행된 이 시점까지 이야기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모험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릿이 모든 신전을 방문하여 축복을 받고 인간으로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목적은 알 수 없습니다. 고양이는 구세주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지금으로서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만이 있습니다. 예언자를 만났는데도요. ‘푸른 방패’에 속하는 훡과 마이야는 둘 다 제자의 입장에서 스승을 믿고 가입했기에 단체의 목적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동생인 시피는 릿이 인간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또한 핵심 단체라고 할 수 있는 ‘푸른 방패’나 ‘황혼과 여명’은 무엇을 위해서 움직이는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핵심 설정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풀어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편이죠. 이야기도 초반이라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갈등이 해결되는 느낌이 아니라 잔뜩 깔린 복선과 갈등이 조금씩 풀리는 맛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거꾸로 중요하지만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지 않는 동료들의 과거와 고민은 상당히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더 에피소드와 엮어서 표현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이런 컴패니언 퀘스트(?)까지 적는다면 소설의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거 같네요.

글을 읽는데 불편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적었습니다. 가끔 오타가 보이는 정도입니다. 대화는 주연 4인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가끔 다른 등장인물이 포함됩니다. 다만 성격이 중복되거나 어투가 비슷한 인물은 없고, 대화 배분도 잘 나눠져 있어서 읽다가 인물이 헷갈리지는 않습니다. 그저 대화문에도 줄바꿈이 없다보니 상당히 빽빽해서 눈이 피곤한 편입니다. 모바일로 보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 중반부터는 모바일로 읽었습니다. 내용보다는 조금 다듬으면 되는 정도니 큰 불만은 없습니다. 이러면 안 그래도 평균 60매라 스크롤이 긴데 엄청 길어지겠네요. 그 밖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재의 텀이 길다는 정도입니다.

 

이미 온갖 스포일러랑 아쉬운 점까지 다 적은 마당에 맨 마지막에 추천하기도 그렇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글입니다. 학교에서 판타지 소설 읽을 때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약간 기묘한 파티의 모험을 따라가실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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