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리뷰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가끔 재미있게 읽고 감상을 남기고 싶지만, 막상 감상을 적으려면 막막해지는 글이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도 그런 종류의 글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굳이 따로 적지 않아도 글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저절로 머리에 들어오는 소설이었거든요. 다른 해석도 나오기 힘들 정도로 명확한 이야기입니다. 중간에 살짝살짝 나오는 복선과 대화 전체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후반부에 그 정보들이 엮이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하나의 주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 감상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겠습니다.
1) 이야기는 면접에서 시작되어 면접으로 끝납니다. 개인적으로 면접이라는 소재는 꽤 생소했습니다. 형식으로 따지자면 인터뷰나 혹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더 많지 않을까요? 하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면접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이 상당히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접은 면접관이 면접자를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면접관은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고 때로는 가벼운 시험을 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또한, 면접자는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고 해도 자연스럽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상황과 정보가 제공됩니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뿐 아니라 목표까지 뚜렷합니다. 당연히 흥미와 긴장감도 지속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환상특급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인터넷으로 한 편 본 정도긴 하지만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짧은 드라마임에도 놀랍도록 몰입해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 소설도 단편 드라마를 만든다면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2) 네 명의 면접관들은 신비하고 상징적인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너무 대놓고 이미지 만드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희로애락을 표현한 가면 뒤에 숨은 면접관, 아름답지만 쓸쓸한 전망대, 지구보다 몇 년은 앞선 기술력을 가진 신비한 기업. 사실 무성생식과 디자인 베이비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업치고는 다소 기묘한 느낌입니다. 조금 더 가정적이거나 친근한 이미지를 쓰지 않을까요? 신비는 매력적이지만 신뢰와 안심과 같이 가긴 어려우니까요.
어쩌면 주인공인 안서인에게만 그렇게 보여준 걸 수도 있습니다. 면접을 가상공간에서 한 것도 그렇고요. 안서언의 출생은 크레이들 사에서도 독특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더 솔직한 답변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3) 작 중에서 면접관들은 친족 살해를 말하면서 오이디푸스와 햄릿을 언급합니다. 이 부분은 안서언의 친족 살해와 비교되면서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과거의 등장하는 친족 살해는 인간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초자연적인 존재 때문에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서언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만, 과학의 발전을 통해 한 개인에게 뒤틀린 비극을 심어주었습니다.
과학은 발전하고 인간과 윤리의 경계를 해체합니다. 크레이들은 안서언 이후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질문은 있지만 해답은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언급되지 않는 게 낫겠죠. 하지만 지구의 과학이 크레이들을 따라잡고, 그리고 크레이들 사가 더욱더 발전한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요? 과학의 발명은 인간을 어떻게 바꿀까요?
4) “너 자신을 알라.”
크레이들 사의 사훈이자 소크라테스가 인용한 이 말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말이라고 합니다. 중요하지는 않지만요. 여튼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아는지, 그리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진정한 앎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서인은 자신이 디자인 베이비라는 걸 상당히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그리고 묘사를 보아서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그리 궁금해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았다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왜 어머니가 무성생식으로 자신을 낳았는지 알고자 노력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머니한테든 크레이들한테든 알아보려고 했다면요.
어쩌면 아버지이자 삼촌이자 형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사건은 벌어졌습니다. 어쩌면 크레이들 사의 사훈은 이걸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윤리도, 가치도 희미해진다면 적어도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릴 수 있다고 말이죠.
5) 크레이들 사는 왜 주인공을 받아들이기로 했을까요. 어쩌면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 번 콜로니로 오게 되면 지구로 돌아가기 힘드니까요. 거꾸로 책임감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크레이들 사는 안서인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비극을 심어준 책임도 어느 정도 있고요. 아무리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먼 지구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한들 안서인은 요람에서 태어난 자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