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아직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리뷰의 대상이 되는 소설 ‘마지막 마법사’는 ‘어반 판타지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그래서 리뷰를 쓰기까지 대단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만큼이나 용기도 필요했다. 내가 이 작품에 대해 안 좋은 평을 내린다면 1. 심사위원을 우습게 본다고 여겨지거나 2. 심사위원보다 못한 주제에 어딜 깝치냐고 욕을 먹을 수도 있을테니까.
하지만 어떤 면에서 나는 심사위원에 비해 엄청난 어드벤티지를 하나 가지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심사 기간 내에 모든 글을 다 읽고 분류하고 순위를 매기고 해야한다. 그러나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 작품 하나만 몇 번이고 뜯어볼 수 있다(심지어 내가 리뷰에 쓴 내용은 매우매우 주관적이기까지 하다!). 때문에 요 며칠 하루에 한 번씩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아래의 내용은 그 생각의 결론 비스무리한 것이다.
1. 일단, 어반 판타지란 뭘까
처음에 어반 판타지 공모전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의 질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어반 판타지인가’ 였다. 내 기준으로 어반 판타지는 ‘(실존과 허구를 막론하고) 하나의 특정한 도시를 배경으로 소설의 스토리가 도시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이 작품에는 서울시 종로구의 위치에 ‘가람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치하였지만,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람시에서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서울의 동남쪽 이곳저곳을 무대로하며, 그에 따라 실존하는 여러 지역과 랜드마크가 등장한다. 단순히 등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랜드마크가 ‘스토리에 적극적으로 이용’된다. 가령 명칭은 등장하지 않ㅈ미나 해바라기씨 모양 + 초고층 빌딩 + 잠실역 2번 출구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랜드마크를 머리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 전반에 걸쳐 도시는 단순히 배경으로 머무르지 않고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행방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것이 어반 판타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2. 체호프의 총은 잔탄량이 이미 제로야!
이것은 작가 해도연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몇 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초반에 풀어두었던 떡밥은 거의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회수된다. 풀어놓은 떡밥을 회수하는 것은 분명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떡밥이 은근하게 뒤에 자리잡고 앉은 게 아니라 최일선으로 뛰쳐나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떡밥이 존재감을 과시하려 들면 독자는 ‘이게 뒤에서 어떻게든 다시 나오겠군’ 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어떤 방식으로 회수될까’ 하고 상상한다. 독자의 상상을 완벽하게 뒤집어버리는 방식으로 떡밥이 회수된다면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의 떡밥들은 몇 개 빼고 내 예상대로였다. 그게 참 아쉬웠다.
3. 물 흐르듯 흘러가는 스토리
이 작품의 이야기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술술 읽고 있노라면 크게 딴지 걸 곳이 없다. 가령 마법사 혹은 마법의 존재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랬다. 마블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보면 에인션트 원은 스티븐 스트레인지에게 ‘마법이란 이 세계를 수정하는 프로그래밍 코드 같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개념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작가는 이러한 개념을 독자에게 현실적인 개념을 덧붙여서 설명한다. 현실적인 개념(프로그래밍 코드)가 비현실적인 개념(마법)을 정당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그러한 설명은 찾기가 어렵다. 마법사의 거죽을 입고 붙이고 있으면 마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개념을 통해 비현실적인 개념을 정당화한 셈이다. 물론 단순히 ‘마법사 가죽 입으면 마법 쓸 수 있음’ 하고 끝내놓지는 않았다. 작가는 한국인 특유의 무언가를 끌어들여 비현실적인 것들을 뒷받침하였다. ‘한국 사람은 몸에 좋다면 뭐든 닥치는대로 먹는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에 좋다면 마법사 시체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4. 한 번만 읽으면 알 수가 없는 것
작가가 워낙 글을 술술 읽히도록 만들어서 처음 읽었을 때는 모르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았다. 두세번 읽고나서야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령 주하와 세나의 관계가 그렇다. 왜 세나는 주하에게 존대를 강요하는 가? 이유는 알 수 없다. 작품 속에서 주하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독자에게 소개되는 내용은 얼마 없다. 주하는 단지 세나를 움직이기 위해 소비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터 대령과 골고다 할아범의 관계도 그렇다. 작품 내에서 카터 대령과 골고다 할아범이 손을 잡은 증거는 제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페이 위의 입으로만 설명될 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그레이가 카터 대령에 의해 조져진 상태로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카터 대령이 최종 보스처럼 분위기 잡고 있다.
1) 머리 외에는 모두 유실처리 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페이 위는 ‘교주와 대령이 거래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제로 거래를 했는지 아니면 교주가 시체를 훔쳤고 대령이 책임지기 싫어서 유실처리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2) 라이트로드 연대가 주하를 데려갔다. 그러므로 대령이 교주와 거래를 했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도중에 골고다 할아범이 도중에 주하를 빼돌렸을 수도 있으므로.
3) EXIF를 암호화 하는 방식이 라이트로드 연대의 그것이다. 그러므로… 라는 논리도 이상하다. 일단 여기서는 왜 굳이 EXIF를 암호화했는지도 모르겠다. EXIF는 삭제하면 그만 아닌가?
각잡고 보기 전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각잡고 보기 시작하니까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다.
5.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배치한 요소들에 대한 의문
가람시는 왜 특별한가. 나는 몇 번을 읽어도 명확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령 그라운드 제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9.11 메모리얼 파크가 위치한 뉴욕 시를 생각해보자. 뉴욕 시는 맨해튼을 특별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가람시는 국가로부터 특별취급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작가가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세나는 행정기구의 요청을 어떻게든 거부하고 싶지만, 가람시가 주는 특혜를 잃고 싶지 않기에 결국 요청을 수락한다. 애당초 가람시에 특혜가 없었더라면 세나는 ‘엿먹어라 간나새끼들아! 나는 귀찮은 일 따위 안 할란다!!’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스토리는 진행되지 않는다.
6. 주하는 택시 드리벌
택시 기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회사에 소속된 기사, 다른 하나는 자영업자 기사이다. 초반에 주하는 자영업자 기사처럼 묘사된다. 행정기구는 주하가 ‘차량을 자기 돈으로 사거나 빌려야 하고, 유지 관리도 직접 해야 할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는 가람시 특혜 덕분에 다른 돈으로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아닐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주하는 그래 자영업자 택시 기사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납금 채우기 바쁜 택시 기사들이 한가롭게 여자친구 태워주려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런데 후반에 주하는 월차를 쓰기 위해 택시 회사로 전화를 건다. 자영업자 기사는 택시 회사 소속이 아니다. 만약 주하가 회사에 소속된 기사라면 애당초 차량을 자기 돈으로 사거나 빌려야 할 필요가 없다. 차량은 전부 회사의 소유로 되어있으니까. 어쩌면 이것이 행정기구가 잉여 머저리들이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제시하려는 작가의 빅픽쳐일 수도 있겠다.
7. 예언서는 예언하지 않았다
결론만 놓고 보면 그렇게 되었다. 6세기의 과거로 돌아간 주하와 세나가 집필한 그 예언서 말이다. 이 예언서는 후반에 ‘세나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게 좀 애매하게 느껴졌다. 작중에 제시되는 예언서의 (인물의 입을 통해 해석이 완전치 않아 부정확하다고는 하지만) 내용을 보면 복선으로 사용하기에는 좀 허술하다. 중의적인 문장으로 제시되지만 독자로 하여금 편향적으로 읽히도록 묘사하고, 후반에 그걸 뒤집는 방식이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8. 하지만
재미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건 사실 꽤 사소한 것들이다. 이 작품은 첫줄에서 말했듯 ‘어반 판타지’ 수상작이기 때문에 황금가지의 어마무시한 편집진에서 내가 짚어내지 못한 것들까지 호로록 해서 깔끔한 장편으로 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 혼자 하고 있다. 거의 모든 해도연 작가의 작품의 리뷰의 끝에 나는 ‘이 작품은 이 분량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다! 분량을 따불로 늘리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같은 소리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분량이 너무 적어서 감칠맛이 난다.
+ 사소한 오타가 몇 개 있었다. 가령 “목을 잡아, 커터”의 경우에는 Cutter가 아니라 카터를 잘못 쓰신 것이리라. 같은 회차의 ‘제 계획’도 ‘내 계획’을 잘못 쓰신 거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