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희망도 없지만 생존은 있는 공간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쉘터 (작가: 소현수, 작품정보)
리뷰어: bridge, 18년 2월, 조회 80

1

 

흔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라 부르는 장르를 매우 좋아한다

극도의 절망만이 존재하는 지구(혹은 어딘가)라는 공간에서 순수하게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질병, 자연재해, 핵전쟁, 외계인, 괴생물체 등등 딸려오는 키워드도 다양하다

다소 마니악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게임, 소설, 영화 등의 각종 매체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이 장르에 홀린 것이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2

 

브릿G를 나름 오래 이용한 편이다

그간 ‘꽂혔다’고 말할 수 있을 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쉘터>는 이런 나의 취향을 정말 제대로, 고스란히 저격한 글이었다

어느 날 소행성이 지구를 빵 하고 후려패고, 덕분에 평화롭던 지구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 와중에 외계인이 홀연히 나타나 생존의 방법을 제시하니 당장 내일 죽냐 모레 죽냐가 ‘출근하기 싫어’보다 더 큰 위협이 된 지구인들은 거기에 혹 할 수 밖에 없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쉘터>의 탑승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3

 

사실 이러한 기본 틀은 흔하디 흔한 설정이고, 아주 새롭다거나 특이한 부분은 없다는 것이 수많은 유사테마를 경험해본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형적인 부분이 있기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특유의 ‘클래식’함이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다

말하자면 ‘아, 이런 거 보고 싶은데’ 니즈를 적절하게 만족시켜 준달까

다분히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앞서 이야기했듯 새로울 게 없는 구성임에도 재미가 있어 쭈욱 읽어나가게 된다

매력있는 소재에 무난한 필력, 적당한 속도감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다분히 자극적일 수 있는 요소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과한 묘사나 부각이 없어 그리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도 명백하게 느껴진다

특정 캐릭터의 지나친, 거의 연극 독백에 가까울 정도의 지나친 대사량은 듣는 이를 지치게 한다

캐릭터의 상황과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이어질 사건들에 대한 초석을 쌓는 과정이겠지만, 상당한 분량의 문단을 할애한 것 치고는 캐릭터의 심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20대 초반의 여성이 쓰는 말투가 전혀 ’20대 초반’스럽지 않다는 것도 몰입을 깨는 부분

‘-하더군요’, ‘그들은-‘ 같은, 해당 화자의 시대적/환경적 세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투는 어색하기 그지없더라

굉장히 사소한 부분일 수 있겠지만 쉘터에 들어오기 전에 대해 털어 놓는 부분을 읽다 보니, 776이 직접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30대 후반인 777이 들은 내용을 재구성해서 들려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대신 주인공인 777의 경우엔 형편이 더 낫다

나름의 촘촘한 설정은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보니 777의 이야기에는 나름 몰입이 되는 반면, 여성인 776의 경우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라기보다 ‘복수’의 불씨를 당겨주기 위해 자리할 뿐인 존재 같아 아쉽다

빈약한 캐릭터성을 채우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음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듯 하나, 776이 어느정도 작품 내에서 중요한 롤을 맡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후의 모습을 두고 볼까 한다

소재나 진행되는 내용에 비해 글 자체가 다소 가벼운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아쉬운 점

좀 더 꿈도 희망도 없는, 살아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숨막히는 공간인 <쉘터>를 상상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무겁고 텁텁한 분위기가 충분히 표현되지 않아서 장르의 팬 입장에서 뭔가 갈증이 느껴졌다

글쓴 이의 필력에 조금만 힘이 더 실린다면- 제법 몰입도가 더 좋아질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열개가 훌쩍 넘는 화수를 훌렁훌렁 읽어버린 걸 보면, 포텐셜은 분명 갖추고 있다고 생각됨

가능하면 777의 생존이 제법 오래 지속되어 앞으로 브릿G를 찾는 이유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싶었으니 말이다

장단점이 확연하지만 아직까진 장점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입장에서 써본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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