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이후의 이야기. 공모

대상작품: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 반도, 작품정보)
리뷰어: 코르닉스, 18년 2월, 조회 64

게으른 감상입니다.

 

이야기에서 엔딩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변하지 않는 것으로 돌아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 성장한 등장인물은 엔딩에서 깨달음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런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엔딩 이후에 새로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연작하는 경우에는 같은 주인공이 계속 다른 사건을 겪으며 다른 엔딩을 맞이하니까요.

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일상에 적응하는 내용도, 그렇다고 본편(?)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엔딩에 머물지 못합니다. 리뷰 제목을 엔딩 이후의 이야기라고 적은 건 그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원래라면 하렘 엔딩을 맞이한 뒤 변한 일상을 잠깐 보여주는 후일담에 해당합니다. 하렘의 구성원이 된 네 명의 히로인들이 발렌타인데이에 ‘주인공 군’에게 줄 초콜릿을 만들고 건네주면서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면서 말이죠. 하지만 작가는 그 대신 주인공의 마음에 어떤 괴리가 숨어있고 어떻게 드러났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줍니다.

 

전반적으로 하렘 러브코미디의 클리셰를 건들면서 씁쓸해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좋았습니다. 사실 내용과는 별도로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캐릭터가 클리셰를 직접 언급하는 건 취향이거든요. 물론 제가 즐거운 것과는 달리 글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사랑은 인류의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입니다. 수 천 년동안 똑똑한 사람들이 고민을 해도 결론을 내지 못했죠. 그건 사랑은 모두에게 같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대체로 공감할 수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같지 않죠. 하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향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책임한 방관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 취향을 가진 캐릭터로 보이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욕망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요. 동시에 하렘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욕망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독점적인 사랑을 주는 순간 하렘은 붕괴합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주인공은 독점적 사랑을 원하면서도 하렘이 붕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하렘의 구성원들도 좋아하니까요. 모두가 합의했고, 모두가 약속한 일상은 점점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하렘을 유지하든, 하렘을 깨뜨리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렸습니다. 숨겨져 있던 갈등을 조금씩 끄집어내고, 고민하고, 공감하게 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주인공에 대해 사랑이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군’을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언급하다 보니 정말 ‘주인공 군’을 사랑하기보다는 ‘주인공 군’을 사랑한다는 전제하에 움직이는 캐릭터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저렇게 좋아하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품을 거 같네요. 차라리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에피소드만 짧게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전형적인 하렘과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쳐낼 수 밖에 없다는 건 이해되지만요.

말은 장황하게 했지만, 그 정도로 우울하거나 읽기 어려운 글은 아닙니다.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읽기 쉬웠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달콤씁쓸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까만 초콜릿이 떠오르더라고요. 발렌타인에 어울리는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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