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와 비슷한 문제를 수학자 폴리야가 쓴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책에서 처음 읽었습니다. 제 소설인 [짝사랑 문제]의 주인공인 홍세영군도 아마 읽었을 것 같군요. G고등학교의 두산동아 수학교과서를 쓰신 우정호 박사님이 번역하시고 소개한 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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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이 지나서도 세영은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답지를 보고서야 ‘흰색’ ‘정답’을 알게 되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해서 북극곰이고 흰색이다. 증명은 생략하니 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게 스포일러는 아니겠지?
세영은 인터넷을 좀 검색해보았다. 결국 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문제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 반론. 만약 이 문제의 논리대로라면 사냥꾼은 정확하게 북극점에 살아야 한다. 하지만 북극점에 사는 사냥꾼은 물론이고, 집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다. 지금도 없다.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위키백과를 보면
“북극점은 지구의 가장 북쪽 지점을 말한다. 북극해의 가운데에 있으며 북극점 지점의 깊이는 4087 m이다. 북극점은 지구 최북단 지점으로서, 남극점과 직경으로 정반대 지점에 위치해 있다. “
다시 말해 북극점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 못 믿겠다면 구글 지도로 찾아보라. 아문센 같은 남극점 탐험가는 있었어도 북극점 탐험가는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두 번째 반론 문제 어디에도 사냥꾼이 지구에 산다는 말이 없다. 사냥꾼이 만약에 다른 행성에 산다고 해보자. 그 행성은 너무 태양에 가까워서 북극만 생명체가 살 수 있고, 다른 지역은 펄펄 끓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 만약 ‘곰’이라고 부를만한 생명체가 있다면 갈색일 것이다.
세 번째 반론 문제 어디에도 시대를 한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활이 아니라 ‘총’을 쓴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 총이 레이저 총인지 어떻게 아는가.
이게 왜 중요하냐면 북극이 녹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면 ‘북극곰’의 가죽 색깔은 갈색으로 변할 것이다.
네 번째 반론 알아보니 북극곰의 털색은 원래 갈색이라고 한다. (링크 참조) 특이한 털의 나노 구조 때문에 흰색으로 보일 뿐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이런 생물들이 여럿 있다. 빛의 산란을 이용해서 파랗게 보이는 새라던가, 굴절을 이용해 색이 변하는 나비라던가 등등.
다섯 번째 반론. 이 사냥꾼이 어떻게 정확하게 남쪽, 동쪽, 북쪽을 찾았냐는 것이다.
뭐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이 빙하에, 북극점에, 이누이트족 사냥꾼이 산다고 치자. 현재 북극곰 사냥권은 이누이트 족에게만 문화보존을 위해 허가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왜 활이 아니라 총을 쓰는 건지도 생략하자.
동서남북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일반적으로 북반구에서는 낮에는 태양을 보고 남쪽을 찾는다. 12시에 태양이 남중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북극성을 보고 북쪽을 찾는다. 전통부족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북극’에서는 북극성을 쓸 수도 없고 태양을 쓸 수도 없다.
북극에서는 하루 종일 태양이 떠 있거나 하루 종일 진다. 6개월 동안 해가 떠 있는 밤, ‘백야’가 지속되기도 한다. 해가 ‘남쪽’에 떠있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면 인터넷이나 지구 과학 교과서를 찾아보도록 하자.
마찬가지로 북극성은 항상 ‘머리 위’에 있다. 1km정도 걸어도 미동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이 문제의 가정을 생각하면, 이 사냥꾼은 겨우 1km거리에서 완벽한 정확도로 동서남북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니 북극점에 집이 있으니 집을 보고 찾은 게 아닐까 싶다. 집에 가까워지면 북극. 멀어지면 남극. 오른쪽은 동쪽.
이 반론은 폐기하도록 하자.
여튼 결론은 이 문제는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세영이 3일 동안 못 푼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생각해보니 남들이 어떤 답을 냈는지 안 봤는데… (정말로) 설마 나랑 똑같은 사람이 또 있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