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스름이 머물고 있는 새벽,
홀로 깨어 호숫가를 거닐어 봅니다.
하얗게 피어오른 짙은 물안개 속에서,
습기를 한껏 머금은 비릿한 공기를 들이쉽니다.
자박이는 걸음마다 사그락거리며 낙엽이 스러지고,
찰방이는 물고기의 생동이 잔잔한 파문을 만들며
차분하게 고요를 흔들어 깨웁니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듯한 그 시공간 속에서
여러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가만가만 걸음을 옮기는 것 만으로도
적당한 고양감이 텅 빈 가슴을 메웁니다.
‘바르데’ 작가님이 등록한 글들을 읽는 재미는
그처럼 고즈넉한 새벽 호숫가를 거니는 것 같습니다.
처음 ‘바르데’ 작가님의 글을 읽었을 때,
평소의 독서 방식으로 대여섯 문장을 순식간에 읽어내려갔습니다.
두 번째 단락을 이어서 읽어 내려가기 전,
고개를 갸웃거린 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사의 흐름이나 짜임새,
인물의 개성이나 상황 묘사, 문체 등등
무의식 속에서 기계처럼 글을 읽어내고 있는
자신을 느끼며 ‘아차!’ 싶었습니다.
산문이지만 운문을 읽듯 호흡을 천천히 하고
글의 내용은 심상으로 떠올리며 그 느낌만 향유해도
의미가 충분한 글이었습니다.
비단 ‘나무에 오르면’ 뿐만 아니라
‘바르데’ 작가님의 다른 등록 작품들 역시
서사의 정도는 차이가 있었지만,
차분한 호흡으로 읽어 내며 심상을 즐길 때
글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장르소설을 섭렵하는 중이었고,
반복적인 서사의 틀과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무심하게 소화해내면서 조금 지쳐있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바르데’ 님의 글을 음미하며
머릿속을 잠시 환기하고 갑니다.
마치 새벽 호숫가를 홀로 거닐 듯이요.
by 산을넘는바람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