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믹 호러를 압도하는 그 무엇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우리가 찜통 속 만두라면? 거기에 누군가가 실험을 하고 있는 거라면? (작가: 유혁, 작품정보)
리뷰어: 고수고수, 22년 7월, 조회 90

온 세상이 만두 찜통처럼 푹푹 찌던 어느 여름날 밤, 저는 잠이 오지 않아 브릿G의 중단편 목록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글 하나를 클릭하고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갑자기 불어닥친 재앙,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 불러일으키는 코스믹 공포. 인간의 몸을 무자비하게 꿰뚫거나 둘로 찢어버리는 고어적 묘사.(거기에 ‘아무리 요청을 해도 연락이 오지 않는 에어컨 기사님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기세’라는 현실적인 공포까지!)

글을 모두 읽은 저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급기야 이렇게 중얼거리고 맙니다.

– 찐만두 먹고 싶다.

<식욕은 공포를 압도한다.>라는, 하찮은 진리 하나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 * *

유혁 작가님의 『우리가 찜통 속 만두라면? 거기에 누군가가 실험을 하고 있는 거라면?』은 제목에 줄거리가 얼추 다 나와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소설 내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처음 묘사될 때 이미 제목으로 스포를 당해 버린 독자는 ‘아, 이러저러하겠구나.’하고 예상을 해 버리는 탓에 그 충격이 많이 희석됩니다.

하지만 이 제목은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 매력적인 제목이기도 합니다. 본격추리물 편식쟁이인 저만 해도, 원래는 ‘추리’라는 말이 붙어 있는 글만 주로 클릭하거든요.(그래서 실수로 메추리알도 가끔 클릭합니다.) 하지만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이거 클릭하지 않으면 자다가 이불 걷어차고 일어나서 ‘클릭!’이라고 외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더군요.(다행히 클릭했고, 이날 밤에는 푹 잘 잤습니다.)

이 작품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절묘한 공개 날짜도 한몫을 합니다. 지금 이렇게 푹푹 찌는 계절에 『우리가 냉장고 속 얼음이라면? 거기에 누군가가 실험을 하고 있는 거라면?』이라는 내용이었다면 이만큼 공감이 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독자들은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그럴 만두 하지!(오타 아님)’하고 이야기에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뭐, 그렇다고 겨울에 이 작품을 읽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만두, 특히 찜통에서 하얗게 올라오는 김과 더불어 촉촉하고 쫄깃하게 익은 찐만두는 겨울 추위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간식이니까요. 그 유명한 씨엠송도 있지 않습니까.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 아, 이거 지금 보니 만두가 아니라 호빵이군요. 그냥 넘어갑시다.)

사실, 이 작품의 진짜 공감 포인트는 만두가 아니라 이런 황당한 아포칼립스적 세계에 현실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일 겁니다. 무시무시한 젓가락이 내려와 인간을 찢고 잡아서 올라가고 난리가 났는데 이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흔한 유튜브 영상으로 돌게 된다든가, 이상기후로 타국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나가도 먹고사는 데 바빠 그러려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든가, 만두교가 창설되자 서로 교리를 가지고 싸우고 사이비신이 등장해 사람들을 등쳐먹는다는가 하는 데에서는 정말 웃프다는 표현이 절로 나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블랙코미디일 뿐, 인간을 어디 만두 따위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인간의 인식을 넘어설 정도로 거대하고 경이로운 존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찐만두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으리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아니, 어쩌면 찐만두는 인간을 인식할지도 모르겠네요. 입이 없어서 표현만 못하는 것일지도요. 만약 그렇다면 인간을 만두처럼 젓가락으로 집어드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은(더구나 입도 있습니다.) 인식력 부문에서 찐만두에게 완패입니다. 하긴 인간이 찐만두에게 잘난척해 봐야 뭐하겠습니까. 이런 유명한 시도 있지요. <찐만두 함부로 뒤적이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맛있는 음식이었느냐>. 혹시 이 시가 찐만두가 아니라 다른 소재 아니었나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기분 탓입니다.

하여간 글을 썼으니 이제 결론을 내려야겠군요. 사실 원고지 500매 이상으로 리뷰를 작성해서 소설로는 중편소설 분량, 리뷰로는 대하리뷰 분량을 생각했습니다만 컴퓨터가 있는 방에 에어컨이 없어서 선풍기 강풍으로 견디려니 힘드네요. 이 작품을 읽으신 분들은 제가 리뷰를 더 길게 쓰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공감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결국, 우리는 제목처럼 찜통 속 만두일 뿐이고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거대하고 경이로운 존재의 실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던 인간은 잠시나마 겸손해질 수 있겠지요. 그리고 진짜 결론. 오늘 저녁은 찐만두를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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