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은 휴게소에 들르지 않는다.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아고스티즈 (작가: 리체르카,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12월, 조회 95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붙들고 글을 썼는데, 남은 거라곤 고작 공백 제외 6백자 남짓일 때. 문장의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루에 1만자 씩 써버리고 싶다고. 그렇지만 그것은 요원한 소망일 뿐이라서, 나는 문장의 순서나 문장 간의 어감 따위에 집중하며 오늘도 몇 백자 밖에 쓰질 못한다.

리체르카 님은 어느 쪽이냐 내게 묻는다면, 문장의 퀄리티를 신경쓰지 않으며 오로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분이라 하겠다. 문장의 퀄리티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말과는 달라서 신경쓰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수준은 꾸준하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신경쓰지 않아도 읽을만한 문장이 술술 나온다. 언젠가 ‘행아웃’이라는 것을 통해 리체르카 님이 글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다. 나는 이 작품도 그런 식으로 쓰였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착상으로부터 탈고까지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한 추측의 근거로 먼저 작품 곳곳에 산적한 디테일의 오류를 들 수 있을 거 같다. 가령 이 작품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럼주에 대한 오해이다. 럼주가 뱃사람들의 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선원들이 취할 정도로 마실 수 있는 술은 아니었다. 선원들이 럼주로 반쯤이나마 취할 수 있을 때는 전투 직전 뿐이다. 쿠데타가 일어나서 선장 목 따고 럼주 뚜껑도 따고 뭐 그러지 않는 이상 술은 엄격한 통제 하에 지급되는 물품이었다. 또한 럼주를 지급하는 이유도 스트레이트로 때려마시고 취하라는 게 아니라, 장기간의 항해 중에 물이 썩게 되니 그것을 독한 럼주의 맛으로 덮으라는 까닭이었다. 지급받은 럼주는 물에 타서 마신다.

또 이런 것도 있다. Day 22의 부분을 살펴보자.

솔레온 호는 돛대 세 개, 그리고 가로돛 두 개와 삼각돛 하나. 그것도 선체를 전반적으로 넉넉히 감싸며 펼칠만한 크기의 돛을 가지고 있다.

돛대가 세 개라면 돛은 총 몇 개가 걸려있어야 할까. 가로돛 두 개와 삼각돛 하나는 아니다(가로돛이란 단어도 사각돛이라고 해야 될 거 같지만, 그건 넘어가자). 확실하진 않지만, 돛대가 세 개라서 2+1이라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싶다. 돛대가 세 개라면 사각돛은 무조건 세 개가 달려있다고 봐야 옳다. 그리고 삼각돛은 돛대와 돛대의 사이로 용골 방향에 평행하게 걸린다. 돛대와 돛대 사이 뿐만 아니라 돛대와 함미, 함두 사이에도 칠 수 있으므로, 최대 많이 걸면 삼각돛은 네 군데에 칠 수 있다. 돛대가 세 개나 있는데 사각돛과 삼각돛을 세 개 밖에 안 거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돛이 크다는 묘사도, 이 삼각돛과 사각돛이 다 엄청 크다는 건지, 셋 합쳐서 이렇게 크다는 건지, 셋 중 하나만 크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스토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산적한 다양한 디테일 오류 때문에 다 읽고난 이후 나는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리체르카 님이 이 작품을 쓸 때 어느 수준으로 사실확인을 하셨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사실확인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다. 총알은 휴계소에 들르지 않고 곧장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작가는 총알이 아니다. 작가는 총을 쏘는 사람이어야 한다.

 

 

+ 내가 한 이야기가 다 맞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만약 나보다 더 바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댓글이나 쪽지를 통해 오류를 지적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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