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날개옷을 찾아서…!? 감상

대상작품: 폐선로의 명숙 씨 (작가: 양원영, 작품정보)
리뷰어: 아나르코, 17년 10월, 조회 66

어릴 적 우리가 즐겨보던 수많은 전래동화들을 떠올려보면 과연 이게 어린 아이들이 볼 수 있는 내용인가 싶은 의문이 든다. 보통 동화라고하면 아이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도, 권선징악이라는 커다란 교훈까지 전해주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던 동화는 필요이상의 잔인함과 지금으로 봐서는 범죄라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이, 오히려 때로는 착한 일로 포장되어 이야기되어 온 것 같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는 “원래는 어른들도 보던 이야기이며, 동화의 기본적인 목적은 아이들에게 세상이 무서우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겁을 주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뭐 그렇게 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가지만, 그럼에도 이미 들었던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아예 하나를 놓고 보는 건 어떨까?! ‘선녀와 나무꾼’을 떠올려보자. 과연 이 이야기에는 무슨 교훈이 있는 것일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가 발견한 몇몇 글귀는 조금 놀라웠다. ‘선녀와 나무꾼’은 한 나무꾼의 사랑과 아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귀한 사랑을 이루었지만 약속을 소홀히 여긴 탓에 그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하며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흠……. 나무꾼이 선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옷을 숨겨두면서 시작한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를 관계가 아이를 놓고 얼마동안 함께 살았다면 그것이 사랑이 되는 것인가?! 그것도 귀한 사랑이니 소중한 사랑이니 하면서?! 그러다가 약한 마음에 선녀에게 날개를 내주면서 선녀를 하늘로 돌아가게 한 사실에서 얻을 교훈이 그저 사슴이 알려준 규칙을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앞으로는 규칙을 잘 지켜야한다는 것인가?!

왜 뜬금없이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로 이러는가 싶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폐선로의 명숙 씨>의 이야기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녀와 나무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통제와 구속으로 ‘강이’와 엄마를 대하던 아버지를 피해서 서울로 올라온 지 10년이 가까워질 때쯤,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무는 다했을지언정, 분명 좋은 아버지는 아니라 생각하던 강이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이는 악몽을 꾼 엄마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엄마는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낯선 모습의 타인이었다. 지금까지 결코 본 적 없었던 모습의 엄마 명숙이 아닌 ‘명숙 씨’가 되어버린 엄마였다. 명숙 씨가 되어버리는 엄마의 꿈이 계속되고, 결국 두 사람은 기억을 현실로 끌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끔찍한 기억들. 진실은 밝혀야 되는 것일까, 아니면 묻어둬야 하는 것일까, 사이의 선택에서 그들은 진실로 조금씩 다가서게 된다. 공포와 불안, 뭐 그런 느낌들로 가득한 그 진실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기억이라는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엄마였다. 오랜 시간 폐쇄된 길처럼 그녀의 기억도 오랜 시간 끊어졌다. 날개옷을 숨긴 아버지 덕분에 그 기억은 오랜 시간 끊어져 있었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숨겨졌던 기억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는 ‘선녀와 나무꾼’의 교훈을 참 잘 따랐던 것 같다. 자신만의 확실한 규칙과 약속으로 죽을 때까지 그만의 비밀을, 선녀의 날개옷과 같은 기억이라는 날개옷을 끝까지 지켜냈으니 말이다.

<폐선로의 명숙 씨>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우리가 알던 ‘선녀와 나무꾼’과 달리 아이의 입장인, 강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그 시작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어딘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또 공포를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 부정 자체가 그녀에게는 더없이 큰 공포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당연하게도 존경할 것이 없다던 그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 역시 두려움에 엄마의 날개옷을 끝까지 지켜내고픈 마음뿐이었으니까… 그녀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에게 가장 큰 공포는 엄마를 잃는 것, 즉 자신이 버림받는 것이니까. 어릴 적부터 명숙 씨의 존재를, 그녀의 낯선 눈빛을 종종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지 잊고 싶었던 것이 지금에서 드러났을 뿐. 그저 ‘엄마 딸, 강이’ 이고 싶은 것은 강이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자식들의 바람이자 가장 원초적인 욕구 그 자체이니까.

그저 사랑이라 믿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 오랜 시간 묻힌 슬픈 비밀이 되도록 만들어버린 채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의도치 않게 자신의 삶을 잊어버리고 그저 맹목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그러면서도 다시 자신을 찾고 싶은 엄마.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거역할 수 없는 큰 운명과 같은 삶의 무게에 눌려 살아가야할 강이. 결론적으로 모두에게 서글픈 현실,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현실은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이미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는 사실 또한 새삼 느끼게 된다.

끊어진 기억과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끊을 수 없게 되어버린 가족이라는 관계가 묘하게 얽히는 모습이 실제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사실에 조금 더 깊숙이 그들의 삶에 들어가서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까지 전해진다. 또한 누군가에게 미담으로 보일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의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러운 시선의 교환으로 이끌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늘어질 것만 같은 축축한 이야기를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잘 조절하는 능력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검색창에 ‘동해남부선 폐선로’ 라고 입력해 본다.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과 저마다 다른 모습의 사진들이 담겨있었지만 적어도 한가지만은 확실한 듯 보였다. 사진과 이야기 속에 모두 행복한 기운만을 담아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즐겁고 또 행복하게만 보이는 동해남부선의 폐선 철길 구간이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의 기억으로, 어쩌면 기억조차하기 싫은 공간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 ‘동해남부선 폐선로’를 찾아가 걷는다면 이 다양한 감정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그때의 나와 내 주위의 삶은 또 어떤 현실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그런 오랜 여운까지 남기는 작품, <폐선로의 명숙 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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