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집행관>을 쓴 김보영 작가가 추천한 SF 중단편 중의 하나라 읽게 되었습니다. 다섯 편이 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는데 올해 가을 모기 때문에 정말 많이 고생했기에 이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제목이 <모기와 가설>이었거든요.
등장인물이 딱 둘 뿐인 짧은 단편입니다. 하나는 숙녀이고자 하나 조금도 그렇게 대우해 주지 않는 박사님 때문에 곧잘 살인 충동에 빠지는 ‘양’이라는 여성이고요, 다른 하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기 보다는 어딘가 나사가 무더기로 빠진 듯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박사입니다. 어느 날 조용히 독서를 즐기고 있는 양에게 박사님이 헐레벌떡 달려와 드디어 사람이 모기를 쉽게 잡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오옷! 저도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소싯적엔 모기 잘 잡기로 나름 이름 좀 떨쳤는데, 올해는 노안이라도 찾아온 것인지 소리만 들리고 보이진 않아서 정말 잡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잘 잡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준다니! 자세는 바로 하고 눈엔 힘을 한껏 준 채로 얼른 읽어내려 갔습니다.
모기 때문에 잔뜩 시달리다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모기를 잘 잡는 방법을 다섯 시간 동안 연구한 박사는 모기를 잘 잡을 수 없는 까닭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세웁니다. 하여, 제목이 <모기와 가설>인 것이죠. 그런데 으음… 제가 과학에 완전 까막눈이긴 합니다만 이런 제 눈에도 박사가 세운 가설은 도저히 말이 안 되어 보이더군요. 네, 잠시나마 유쾌한 기분을 맛보시라 하는 의미로 쓰인 소설이었던 겁니다. 혹시나 모기를 잘 잡을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만 양과 박사가 주고받는 대화들이 재치 넘치는 만담을 보듯 꽤 재밌기도 하고 예능을 다큐로만 받아들이는 꽉 막힌 인간도 아니어서 즐기는 기분으로 읽어갔습니다.
그러기를 잘한 것 같아요. 이야기는 후반에 박사가 육안으로 쉽게 관찰하려고 유전자를 조작하며 몸집을 부풀린 모기가 뜻하지 않게 풀려나는 바람에 거의 재난 장르에 가까운 소동극이 되거든요. 가을 모기로 시달렸던 분들에겐 더없이 시원할 결말까지 고려하면 작가가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할 수 있는 한 총동원한 느낌입니다. 기분 전환 삼아 읽기에 딱 적당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양과 박사 콤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좀 더 이 둘의 활약을 보고 싶습니다만 아마도 속편은 불가능할 것 같네요. 박사가 양에게 권하는 다음 프로젝트 때문에 아무래도 양이 자신의 살인 충동을 실현했을 것 같거든요. 그러게 탈무드가 물고기가 항상 입을 잘못 놀려 낚이듯 인간도 그렇다면서 말조심하라고 경고한 겁니다. 도대체 무슨 프로젝트이기에 이런 말을 하냐고요? 그건 직접 확인해 볼 것을 권해 드릴게요. 시간을 얼마 안 뺏는 단편이니 부담 가지지 말고 벗해 보세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