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위해 타의로 떠밀리는 인물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우리도 옥상 위 바람에 날아 가버리겠지. (작가: 천가을, 작품정보)
리뷰어: 리체르카, 17년 10월, 조회 73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온정적인 시선 한 번, 동정 한 번 건네어 본 경험은 누구에게라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한 번의 행동이 이후 족쇄가 되어 따라다닌다고 한다면, 누가 타인에게 손을 내밀게 될까요? 게다가 그것이 목숨까지 내맡기려는 이기적인 의존이라면?

 

작중 주인공인 송지수는 아주 똑똑한 학생입니다. 그녀의 노트는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귀한 물건인데, 정작 지수는 그걸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냥 보여달라는 사람 보여주고, 그녀에게 적대적인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말 없는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친한 친구에게도 보여주죠. 그 때문에 그녀의 노트는 모두에게 노출됩니다. 그리하여, 사건이 터지고 말지요.

학구열로 뜨거운 생명과학 클래스에서 터진 컨닝 페이퍼 사건입니다. 모두에게 노트까지 보여주던 친절한 우등생이 할 법한 짓은 아니지만 어쩐지 지수는 구설수에 올라요. 그것이 진짜 구설수인지 아니면 그녀가 느끼는 압박감이 만들어낸 상황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은 후자라고 생각해요. 연수정과 같은 인물 정도나 그녀가 처한 상황을 꼴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요. 하지만 지수는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그녀의 빛나는 지성은 빛을 잃지요. 다행히 탐정이라는 조력자가 있군요! 이제 범인을 찾기 위해 단서를 모을 시간입니다. 탐정과 의논하기 직전 그녀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둘 정도는 있다는 것이 작중에 드러나고, 결과적으로 그 호의는 비뚤어진 것이었음이 밝혀지며 컨닝 페이퍼 사건은 막을 내립니다. 범인의 전학으로요.

 

저는 천가을 작가님이 그려내는 일상 추리물을 나름대로 애독하는 독자입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글을 꾸준히 접해온 독자가 아니라면 작중에 이름 몇 자가 지나가지만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인물-혜인과 같은-들을 보고는 이게 뭐야, 하고 고갤 갸웃거릴 거라고 소소한 의견을 남겨 봅니다. 연관된 세계관이며 같은 인물이라고 말해주는 것은 기존 팬들에게는 반가운 일이겠지만요. 굳이 시간을 소요하며 이야기할 필요가 있기는 했을까 하는 것…….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잠깐 딴생각이 들 법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사견이며, 이런 부분을 더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이번 글 같은 경우에는 굳이 탐정이 필요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지수는 충분히 현명합니다. 당황을 가라앉히고 사태를 냉정하게 본다면 지연의 도움 없이도 사태를 하나하나 짚어갈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연이라는 제 3자의 객관적인 시선 없이 상황을 견지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그녀의 컨닝 페이퍼 사건은 진짜 있었던 일처럼 넘어가 버리고 누군가에게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리며 그것이 지수의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때문에 탐정은 사건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좋은 선택지였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중학교 때부터 이미 탐정으로 유명했던 옛 동창인걸요. 그녀가 왜 탐정이며 어떤 사건을 해결했고 하는 등의 설명 없이도 간단하게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등장인물이지요. 물론 부연이 있다면 더 이해하기는 좋았겠지만요.

 

아쉬운 관계가 있다면 한진이와의 관계가 아닐까 싶은데, 초반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오던 인물이 소민과 지수의 관계적 개선을 강조하기 위해 소모된 느낌이었답니다. 얼핏 보면 지수는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고, 한진은 그녀와 수업도 같이 듣고 공부도 함께하던 친한 친구였잖아요. 누구라도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오해를 받으면 자기는 아니라고 할 테고, 당사자가 안 했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이 한 일일 텐데 그걸 ‘다른 사람 탓을 한다’는 식으로 홀로 실망해버리는 걸 보고 이 새낀 뭐야, 하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인물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믿으란 거야, 하는 다음 대사가 더 가관입니다. 니들 친구 맞니? 이 대목에서 한진이 지수의 노트를 빌리기 위해 그녀의 친구인 척 했다는 가설만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사건 이후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를 보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했더라니까요.

참. 시점상 여기서 나오면 안 될 이야기도 끼어 있습니다. 83-84번째 줄이어요. 지수가 한진을 좋아하는 속내를 비치는데, 이젠 아무래도 좋을 내용이라고 감정을 픽 꺾어버립니다. 그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없게 된다면서요. 맨 첫 단락인 1년 전 상황에서 떠올리는 이야기라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겠지만, 두 번째 단락부터는 1년 전 상황이므로 뭔가 꼬인 묘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극적인 상황에 익숙한 독자인 저는 한진이가 무슨 사고에 휘말려 죽어버리나 보다 생각해버렸어요.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다행인가? 괘씸한 인물로 남아버린 등장인물이 되었네요.

 

교사의 대처가 의문스럽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와중에 이 사건의 범인이 학교 내 폭력사건의 가해자였다는 과거가 밝혀지는데요. 학생들이야 쉬쉬해서 모를 수 있다 쳐도 교사가 모를 리야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여요. 다른 학생들이 노트를 빌리러 올 정도로 성적 좋은 학생이 선생님들에게 빈축을 사는 행동을 했을 리가 있을까요. 그럴 확률은 사실 아주 낮지요. 그러니 지수는 그간 선생님들에게 호의적인 인상의 학생이었을 겁니다. 이 컨닝페이퍼 사건 전까지는요. 거기에 고발한 학생은 지난 사건의 가해자……. 제가 교사였다면 지수가 시험을 보기 전에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들어보고 그녀에게 변명의 기회와 자기변호의 기회를 주었을 거여요. 네가 범인이다. 증거와 증인이 있는데 뭘 발뺌하느냐 몰아붙이지 않고요. 그러나 사건 전개상 필요한 탓이었는지 교사의 캐릭터가 대단히 평면적이었네요.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 생각한다면 크게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지수와 소민보다는 지수와 지연이가 더 관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소민이가 한 행동은 내가 너를 믿는다는 것을 표출한 것? 사실 그건 친한 친구 사이에는 당연히 보여야 할 신뢰의 표현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이 대목에서 작가님이 여자가 아니구나 하고 짐작했어요. 여학생들끼리 껴안고 팔짱을 끼고 손을 잡는 행위가 특별히 친밀해졌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다니……. 원래 친했으면 전에도 하고 있었을 텐데…… 음,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므로 줄이고요.

아무튼, 소민은 그냥 지수를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녀를 안심시키는 역할 이상도 이하도 하지 못하는데, 지연은 그녀에게 근본적인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면서 사건까지 해결해주고 의존할 상대도 되어 주지만 그렇다고 가해자처럼 지수를 옭아매지도 않잖아요. 이 얼마나 건강하고 바람직한 관계입니까? 왜 지수와 소민의 관계가 발전했는지 납득가지 않았던 건 이런 실리적인 도움은 다 지연이가 줬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범인, 윤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탐정의 추리가 끝나자 탐정이 준비해놓은 것처럼 짜잔! 범인이 등장합니다. 아니 대체 어떻게요?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궁금증이 해결되기도 전에 갑자기 자기 고백을 시작하는데, 지연이 알 턱이 없는 윤아와 지수만의 추억(혼자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었던 왜곡된 기억)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잘 읽히던 글은 이 대목에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범인은 지연과 지수의 관계를 알고 있었을까요? 왜 지연이는 범인이 옥상에서 지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을까요. 추리하는 동안 붙어 다녀서 윤아가 탐정을 협박하기라도 했나? 그래서 범인과의 인과 관계가 생겼나? 혼란이 멈추기도 전에 윤아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벌인 사건의 전모를 순순히 털어놓고는 전학을 가 버립니다.

그리고 1년 뒤에, 같은 곳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요. 다시금 구원을 요구하는 윤아를 보며 지수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는 합니다만, 차라리 옥상에 가질 말았어야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냥 옥상에 있는 윤아를 확인하고 119에 전화해서 자살 기도자가 있다고 말하며 그녀와 다시는 만나지 않는 마지막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 물론 작가님이 보여주고자 했던 극적인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천가을 작가님의 글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는 단편이었습니다. 각별히 인물들이 특징적이고 잘 어우러져요. 톡톡 튀는 학생들을 소설 내에서 잘 표현하는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천가을 작가님을 우선 거론할 겁니다. 다만 이번 글은 뭔가를 써야겠다는 압박감에 눌려 쓰신 것인지 이전 같은 독창적인 느낌은 조금 옅었어요. 이 때문에 아쉬웠고, 그래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물들을 가지고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멈추시네? 하는 느낌으로 초조하게 지켜보게 되기도 하고요.

인물이 살아있어도 개연성을 놓치면 결국 장점이 흐려지고 맙니다. 다음 글도 비슷한 관점에서 감상할 거예요! 여기까지 모질게 말해왔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천가을님이 그려내는 일상 추리물을 꽤 즐겁게 읽고 있거든요. 다음에는 좀 더 긍정적인 감상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발전을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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