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모험의 낱말 길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안경 토끼와 밤의 비밀 여행 (작가: 조제,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7년 10월, 조회 109

조제 작가의 [안경 토끼와 밤의 비밀]은 이렇게 시작한다. “송이는 요즘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안경을 쓰니까 안경테가 닿는 코랑 귀도 자꾸 아프고, 얼굴도 이상해 보이는 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안경을 쓰게 된 송이는 기분이 아주 ‘나쁘고’, 코도 ‘아프고’,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언짢다.’ 안경을 쓴 지 딱 일주일 째 되는 토요일 오후, 똑똑한 안경 토끼가 송이를 찾아온다.

송이는 “내가 다시 안경을 쓰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이건 안경 토끼가 들어줄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 송이는 일종의 상실을 겪었고 때문에 생활에 변화가 생겼는데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 대신 새로운 길이 뻗어나간다. 안경토끼가 찾아 오고,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지 않는 길을 발견한다. 넓지는 않지만 송이 혼자 걷기엔 충분해 보이는 은색으로 빛나는 길들 말이다. 이 소설 속 송이는 은백색 길을 걷지만 소설 밖 독자는 이 반짝거리는 길에, 작가가 사용한 무수한 낱말들이 함께 반짝거린다는 걸 느끼게 된다. 

 

동글동글

깡총

폴짝폴짝

반짝반짝

보송보송

동그르르

발딱

콩콩콩콩

끄덕끄덕

방울방울

활짝

     ……

[안경 토끼와 밤의 비밀] 첫 인상은 낭독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마음 맞는 누군가와 만나서 같이 번갈아 낭독하고 싶어졌다. 

‘그리움’, ‘동경’ 그런 감정이 강한 소설이다. 이 감정은 왜 강해지는가. 이면에 슬픔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 송이는 달갑지 않은 변화를 경험하는 중인데 원래로 돌아갈 순 없다. 또 작가는 송이와 독자에게 똑똑한 안경 토끼를 보내주고 보이지 않는 길을 발견하게 해주고 밤의 풍경을 볼 수 있게 해주지만 그러면서도 희망을 함부로 팔지는 않는다.

소설 속 송이의 다시 안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은 충족되지 않고, 소설 밖 독자는 4화에서 송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송이 혼자만 알고 싶어하니 비밀을 해주기로 해요.” 작가는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 안에서 분명히 존재 –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송이, 안경토끼, 그리고 작가이다 –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송이의 비밀은 송이의 비밀로 남는다. 작가에 의해 함부로 공유되지 않는다. 독자인 나는 알 수 없지만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얼핏 보면 포기나 체념 같기도 하지만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에서 면면히 흐르는 정서는 ‘수용(受容)‘이다. 그리고 이런 수용은 아무나 쉽게 말처럼 도달하기는 힘든 지점이고. 이게  [안경 토끼와 밤의 비밀] 이야기가 가진 힘이다. 아름다우면서도 강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슬픈 이야기이도 하고. 얘가 왜 오밤중에 토끼랑 모험을 떠나겠나. 보호자는 어디 갔길래. 토끼 외 송이 주변에는 계속 인간이 부재하고 있다. 외견상 단순한 이야기같지만 여러 가지 감정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다.  픽션의 기능 중 하나가 위로라면 브릿G에서는 이 소설이 그 몫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때문에 이 소설이 계속 연재가 됐음 싶다. 이어지는 송이와 토끼의 모험이 궁금하기도 하고 송이가 어떻게 성장할지도 궁금하고 어른이 된 송이를 다른 이야기에서 보고 싶기도 하고. 현재까지 올라온 분량이 짧지만 좋은 이야기의 씨앗이다. 이 씨앗을 잘 가꿔서 꽃을 피워보시길 소망해본다.

 * 읽으면서 문득 ‘마리 홀 에츠’가 생각났다. 마리 홀 에츠의 장점과 닿아있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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