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리체르카, 17년 10월, 조회 612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처음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발견하고 리뷰를 적었던 것이 4월 20일이어요.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8화에서 125화가 된 피어클리벤을 다시 마주하며 글을 두드립니다. 하루에 한 편씩 올라오던 성실한 글은 어느새 브릿G 판타지 대표작이 되었고, 작가님의 세계는 더욱 깊고 풍성해졌군요. 이 글은 단문응원으로 남기기는 다소 긴 감상이 되겠습니다. 이미 본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과 작가님을 대상으로 적는 글입니다.

옛 세대의 판타지를 그리워하던 독자들에게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주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전지전능한 존재인 용의 등장에도 인간의 존재가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용은 인간들이 서로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앞길을 헤쳐나가는 것을 장려합니다. 그 때문에 용의 계약자라고 할 수 있는 울리케야말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용과의 관계를 얻어 행복해지거나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 것만이 끝이 아니라, 그녀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이 빌러디저드의 궁극적인 역할로 보이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이야기의 많고 많은 부분에서, 교섭이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교섭이 시작되었다. 그 한 마디가 가슴 설레는 문장으로 다가오기까지 기나긴 여정이 있었습니다. 울리케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영지의 후계자도 아닌 딸 중 한 사람에서 피어클리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죠. 용의 점심밥에서 고블린 포로에 대사를 거쳐 영지의 행정관에서 서리심의 중재자에 최근에는 의전을 등에 업은 빌러디저드의 여덟 번째 사자가 되었네요. 뭐라고 축약해야 정확할지 모르겠어요. 그녀만큼 많은 변화를 겪은 인물이 많지 않아서.

백 편을 넘었음에도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지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고, 이야기도 고작해야 1/5쯤 왔을까 싶은 느낌이에요. 분명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워낙 광범위한 세계관이다 보니 느리게 느껴지는 거예요.

일전에 작가님이 한 번 등장인물이 54명쯤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아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을 텐데, 그 모든 사람이 흘러가듯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로 온통 궁금한 것들뿐이구나 싶은 거예요.

아쉽게도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끌고 가는 건 울리케와 그녀에 관련된 사건들뿐이지요. 1인칭 시점이거나 주인공만 비추어주는 시점이었다면 좀 더 이야기가 답답하게 진행되었을 텐데, 이쪽 저쪽을 한 번씩 비추는 것이 조금 복잡하면서도 호기심을 채워주기는 적절하고, 또 주인공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는 답답한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고블린들의 이야기도, 피어클리벤의 서리심 뉘르뉴의 이야기도, 셰이위르의 길이 무언지, 그리고 에단의 축복을 받은 도련님 이야기나 황실 이야기, 한 무리가 아닐 류그라들과 그들이 가진 신성한 나뭇가지 이야기, 아이비레인과 그의 후견인들과 그들이 꾸미는 음모 같은 것들도 점점 풀려 나오겠지요. 제일 궁금한 건 능글맞기로는 소설 내에서 우위를 겨룰 자가 없는 크누드와 관련된 이야기지만요! 그가 몸담고 있던 집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도 알고 싶어요. 진짜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궁금한 것 투성이인데 당장은 급한 이야기 흐름을 따라 몸을 맡기고 있는 느낌이랄지. 작가님이 놓치는 것 없이 하나하나 잘 주워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글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일전에 다른 분이 짚어주셨는데, 모든 인물이 똑똑하다는 점? 여기서 바보같거나 어리숙한 면을 보인 인물이라곤 시야프리테와 랄프 정도? 용병 출신인데도 라그나와 시그리드는 현명하다 못해 작중에서 지력치가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는데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알게 되겠지만, 당장은 의문점이 많아요. 고블린 아우케트가 분명 고블린들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어떻게 특별한 객체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등의 이야기가 분명히 필요할 정도로 이질적인 인물..아니..아니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무튼, 너무 똑똑한 인물들만 어우러져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는 점이 유일하게 도드라지는 단점이라고 봅니다. 독자가 이입할 만한 평범한 인물이 없다는 점. 일전에 작가님께도 드린 말이기는 하지만, 이 단점은 피어클리벤의 금화에서 장점으로 치환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모든 인물이 우둔하고 어리석지 않아 매력적이며 그 성격이 각기 다르므로 씹고 뜯고 맛볼 부분이 다양하니까요.

또 다른 용이 등장했으나 그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고, 빌러디저드에 비교하면 인간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아이비레인의 본래 모습이 그리 궁금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용이 가장 잘하는 것. 그러니까 강자로서 행하는 용서를 잘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인간을 키우고 편들고 조종하고자 하는 존재는 더는 용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 부분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고, 로릭스데가 순진하게 이용만 당하는 도련님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에 기다려 볼 참이지만 분명 빌러디저드보다 매력이 없어요. 처음부터 봐온 게 빌러디저드라 정이 든 건가 싶기도 해요!

추방된 적생자라는 신선한 떡밥이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었지요! 궁금증이 해결되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많은 것들에 정신이 혼미해져요. 몰아서 읽을수록 그 맛이 더 좋은 글입니다. 작가님이 글 쓰는 방식을 듣고 놀랐어요. 정해놓은 게 없으시다니. 작가님 본인도 모르는 방향으로 인물들이 글을 끌고 가는 모양이어요. 어디까지 가게 될지, 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용을 만나고 어떤 흐리뉼과 고블린과 몬스터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더 많은 독자와 함께하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처음처럼 성실하게 연재하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적고 계셔서 즐거워요. 이제는 종이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확신까지 생겼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겁습니다. 여전히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무엇일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어요. 첫 리뷰에서 가졌던 마지막 의문을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작가님이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를 조금 더 진득히 기다리겠습니다.

비록 작가님이 오늘은 뭐 쓰지, 하는 고민으로 시간 대부분을 보내신다는 사실을 알아 좀 놀랐지만, 늘 좋은 글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째 항상 드리던 말을 길게 늘인 것 같은 리뷰네요. 장문 응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네요.

항상 다음이 더 흥미로운 글에 감탄을 보내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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