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강박으로부터의 해방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칼로리 매직 (작가: 탱탱, 작품정보)
리뷰어: 하늘, 17년 10월, 조회 7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긴 글이 아니니 미리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쾌하고 즐거운 단편입니다. 정말로 재밌어요.

제가 이야기들을 만들고 접하면서 혼자 ‘요술 주머니 획득’이라고 부르고 있는 종류의 플롯이 있습니다. 이건 세상에 존재하는 전체 이야기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서 정리할 때 필수적으로 포함될 만한 유형인데요. 주인공이 요술 주머니, 그러니까 신비한 마법의 도구를 얻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내용들이 여기 속합니다. 저는 전문적으로 작법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분명 이 유형의 이야기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걸 이용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요술 주머니이고 마법 도구라서, 대단히 편리하게 플롯을 생성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도구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주인공을 넣는 것만으로 기승전결을 만들 수 있거든요.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들이 이 방식을 이용해 만들어졌어요. 특히 환상적이고 신비한 이미지를 다루는 단막극 같은데서 많이 쓰입니다. 단편에 어울리긴 하지만 데스노트같은 장편에서도 쓰이고요. 매 회 다른 아이템이 나오는 식으로 도라에몽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연작이 되기도 합니다.

설명하자면, 이런 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주인공이 마법의 도구를 얻습니다. 이건 주인공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신비하고 강력한 물건이에요. 대신 이걸 사용하는 데는 대가가 따릅니다. 주인공은 그 사실을 모르고 이 물건을 써서 큰 이득을 얻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물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를 통해 힘을 얻은 대가를 치르게 돼요. 그로 인한 위기가 후반부 주요 갈등이 됩니다.

물건이 아니라 특정한 능력일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일 수도 있지만 전개는 같아요. 그러니까, 이를 접하는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들의 진행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대가를 치르는 건 정해진 수순이에요. 도라에몽의 여러 도구들이 순순히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 건 당연한 거고, 그 다음에 일어나는 소동이 중요합니다. 그를 예상하는 게 팬들이 하는 일이고요.

작가와 독자의 게임입니다. 얘가 이 도구를 써서 결국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처할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게 뭐가 될지 짐작하는 게 이런 이야기를 접하는 진정한 재미입니다.

한데, 이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해요. 수가 읽히는 진행인 만큼 후반부에는 변주가 있어야 하거든요. 작가는 시시한 결말이 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하고 독자는 그를 알아맞히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저는 이런 게 결국 강박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 되는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어요. 이렇게 길게 사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단편 ‘칼로리 매직’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엄청난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이 이야기를 따라갔어요. 전형적인 ‘요술 주머니 획득’ 패턴이든요.

식탐이 엄청난 주인공 ‘곤’은 체중 때문에 항상 고민이에요.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은데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 살이 찌는 걸 피할 수 없으니까요. 어느 날 그녀는 칼로리 매직이라는 책을 삽니다. 다이어트 서적인데, 여기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요. 이 책에 나와 있는 칼로리 댄스를 추면 꿈에 요정이 나타나 그날 먹은 칼로리를 탕감시켜 준다고 합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책의 내용대로 댄스를 추고 잠이 든 곤은 정말로 꿈에서 요정을 만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로 살이 빠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런 진행이 되면 그 다음 전개가 예상이 되잖아요? 분명 곤은 칼로리 댄스로 맛있는 걸 마음껏 먹게 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아무리 코믹한 터치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정해진 패턴은 피할 수 없으니까요. 이건 규칙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봤는데 말입니다 .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오히려 곤은 더욱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펼치게 됩니다. 저는 뒷부분이 너무 짧아서, 왜 이렇게 금방 끝나나 하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그 동안 벌렸던 만큼은 분량이 돼야 수습이 될 걸로 봤거든요. 근데 그냥 끝이에요! 더 많이 먹고, 더 잘 되고, 주인공이 대박 나는 결말인 것입니다. 저는 이 마무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렇게 끝낼 수 있다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재밌었어요. 크게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감상의 재미라는 게, 얼마나 예상을 그럴싸하게 벗어나면서 설득이 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하면 무척 기분 좋게 당한 셈이에요. 정말로 그렇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런 규칙은 부당합니다. 왜 데스노트를 얻으면 지옥에 가야 되는데요. 그냥 싫은 인간들 마음껏 죽이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하하 웃으며 잘 살수도 있잖아요? 어째서 그런 이야기에는 단서가 붙어야 합니까?

그렇게 묻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 단편을 곱씹으며 굉장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곤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으며 몸무게 강박에서 벗어난 것처럼, 저 역시 스토리 강박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어요. 이게 단순히 얻어 걸린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낀 건 후반부 전개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코믹한 액션으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설계는 필요하거든요.

곤은 마지막에 칼로리 요정을 보면서 묻습니다. 이렇게 좋은 특혜라면 뭔가 단점이 있는 거 아니겠냐고. 영혼을 뺏긴다든가 나중에 죽는다든가. 그 때 칼로리 요정의 대답이 가관이에요. 자기는 칼로리를 가져가는 걸로도 이미 많이 얻는 거래요. 상부상조랍니다! 손해 보는 사람이 없대요! 작가의 기지가 빛나는 부분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얘기인가요!

인공 감미료인 아스파탐은 오랫동안 의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설탕의 백배도 넘는 단맛을 내는데, 이렇게 강력한 물질에 문제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당연히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것이고 유해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암의 원인이 된다든가, 뇌가 이상해진다든가. 그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지금 어느 정도 내려진 결론은 그렇게 신체에 큰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단맛만 내고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이 있을 수도 있는 거에요. 살을 빼주면서도 영혼을 빼앗아가지 않는 요정이 있는 거고요! 왜 그러면 안 됩니까! 저는 이런 접근이야말로 세상에 있는 이야기들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왠지 개그물에는 맞지 않는 진지한 리뷰인 것 같지만 이런 리뷰가 어울리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어쩌면 그런 규칙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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