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리뷰 쓸 내용을 다 정리해 놓고도 벌써 이만큼 뜸을 들인 이유는 이 작품에 어울리는 시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법정물, 스릴러에 어울리는 시가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이건 제 역량 부족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들께 작품과 어울리는 시를 선보이는 소소한 재미를, 그에 딱 맞는 시를 적는 느낌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한탄스럽네요. 언젠가 읽던 시에서 이 작품이 보이면 달려와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
제목 얘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팸(Fam), 패밀리의 준말이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 어떠어떠한 이유를 들어서 만드는 소모임들을 ~팸이라고 지칭하더군요. 소속감을 느끼려고 하는 친목도모의 일환이었지만 당시 ‘~팸’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건 좀 꺼려졌던 기억이 나요. 일단 팸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데다가 생소해서 그랬었겠지 싶습니다.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에요.
그래서인지 소설을 처음 클릭 할 때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작품 소개를 읽지 않고 무슨 학생들끼리의 이야기인가 하며 읽기 시작했어요. 역시나 첫 문장이 “소녀는 소년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린 채 누워 있었다.” 였고요. 그럼 그렇지 학생들의 사랑과 질투와 우정과 의리에 관한 내용인가보다 했죠. 길거리를 해매는 소년과 소녀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쳐맞고 왔다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하며 배가 찢어지도록 웃는 장면은 너무 자연스러웠고, 그 지나친 자연스러움이 궁금해졌습니다.
길거리 생활이란 건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그게 웃긴건가 싶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그 소년 소녀가 의외로 번듯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우와 미애라는 걸 알게 됐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호선을 만났죠. 그리고 고변호사가 나오고 칠성과 권창이 다투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숨죽이고 보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정자세를 하고 봤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느라 단문 응원도 거의 달지 못했어요.
제가 팸이란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재고해 볼 만큼 흡입력있고 굉장한 글이었습니다.
팸, 좀 희안한 단어에요. 대체 단어가 마땅히 떠오르질 않네요. 무리와 가족의 사이? 식구(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는 어떨까요.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개인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보살펴 주는 그럼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가 없을 것 같아요. 빈 의미장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버린 팸이란 단어를 이제는 나쁘지 않게 봐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2.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이득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얽히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적당히만 착한 사람들의 이익과 양심이 맞아 떨어지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인거죠. 이렇게 캐릭터들의 성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희열을 느꼈습니다.
가장 이득을 많이 따지는 변호사가 그 중심에 있고요. 좀도둑질을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던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주는 건우와, 돈 되는 일이 아니라면 관계도 칼같지만 자신이 변호를 맡았던 소년을 그대로 내버려 둘수는 없다는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주는 고명호 변호사와 조폭생활을 했지만 후배 아들의 심장수술을 시켜줘야 했고, 검경찰을 피해 달아났지만 자신을 구해준 소년의 여자친구는 찾아 보답하려는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주는 최호선과 구제불능의 사고를 워낙 많이 쳤지만 자신을 위해 옷벗은 후배의 생계는 보장하려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칠성.
이런 외면 할 수 없는 양심과 마주치면서 서로를 지켜주기도, 밀어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그 양심을 지킨 것이 가장 큰 이득을 가지고 왔으니 착한 사람들이라 말해도 안될 건 없겠죠.
3.
소설을 읽는 내내 제가 아는 유일한 도박영화인 타짜가 떠올랐습니다. 모양새는 좀 빠지지만 마치 각자의 패를 들고 서로의 패를 읽어내려 승부를 던지는 도박사들이 떠올랐어요.
건우는 담뱃갑 안에 든 결혼반지의 존재는 전혀 모르고, 호선의 부탁에 따라 고변호사와 연락을 끊었지만요. 고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이자식이 분명 결혼 반지를 들고 달아났기 때문에 연락을 끊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해 보이거든요.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어느 한 캐릭터도 뒤쳐지지 않고 그 입장에 걸맞는 의심을 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게 또 엄청 그럴싸해 보여서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맞긴한데 사실 그게 아냐.”라고 조심스럽게 귀뜸해주고 싶을 지경이 됩니다.
퍼즐의 조각을 세네판 정도 섞은 뒤에 캐릭터들이 자신의 판을 들고 퍼즐 조각을 가져다 맞추는거죠. 퍼즐 조각은 같은게 세네개 있으니 쓴 걸 또 써도 말이 돼요. 그러다 자신의 입장에서 딱 맞아 떨어지는 조각을 찾아내면 그거구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써가는거죠.
아 정말 짜릿했어요.
고변과 천이사, 춘식이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이야기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진행되다니!! 싶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그 느낌, 짜릿한 느낌을 다시 받으려고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읽어나가요. 뜸을 들였다가 캬, 하고 맥주를 마시고 내려 놓을 때 같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4.
문체가 간결해서 장르와 참 잘어울렸습니다. 묘사는 줄이고 사건에만 초점을 맞춰서 탁탁 쳐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보통은 미사여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런 장르에는 어울리지 않겠죠.
리뷰에는 아쉬운 점을 한두개씩 넣고는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제목의 임팩트가 약한 점을 하나 꼽고 싶고요. 작품의 전체를 아우르는 건 알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아쉬워요. 그리고 13회에서 건우가 우겼다고는 하지만 호선의 상태가 꽤 안좋았는데 꼭 미애를 구하는 것을 보러 그 장소에 가야 했을까 란 의문이 들었어요.
고변은 앞서도 말했다시피 자신의 이득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건우의 우김을 들어준 것도 의아했고요. 건우를 절도범으로 신고해서 미안했고, 건우 덕분에 형사사건을 하나 맡았다는 것까지 고려한다고 해도 호선의 상태를 먼저 살피러 집이건 병원이건 하여간 미애보다는 죽어가는 사람을 먼저 살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니면 호선의 상태가 그정도까지 나쁘지 않았으려나요. 하지만 진통제를 사러가야 할 정도로 찡그렸고 호텔에서 달아나느라 좋은 상태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또 호선은 건우에게 목숨빚이 있고, 미애는 꼭 찾아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건우 편을 들어준건가 하고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결론까지 숨막히게 달려가느라 응원글도 많이 못남겼습니다만 리뷰를 보고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머리끝까지 짜릿한 글이에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