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 보면 묘사된 적 없는 작중 인물들의 복장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가요?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복장을 떠올리긴 힘들겠지만 츄리닝이나 폴리에스터100% 스웨터는 아니겠지요. 아마도 한푸, 그것도 원말 명초의 복식일 것입니다.
이 작품과도 약간은 공유하는 복식이겠죠. 물론 황실의 복장과 일반인들의 복장이 같을리는 없지만요. 분위기라는게요. 무협과 오리엔탈 판타지는 잘 구별하기 힘든 장르니까요.
사냥꾼들의 1화를 보면 표지가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복장-후드티와 배트 어쩌면 카타나를 등 뒤에 찬 사람- 이 아니라 북두의 권, 더 정확히는 매드맥스에 나오는 복장을 계속 떠올렸어요. 가죽재킷, 과장된 한쪽 어깨보호대, 검은색 가죽 본디지 등등의 것들이요. 포스트 아포칼립스니까요.
물론 이야기의 끝에서야 주인공, 그리고 세상에게 맞는 복장을 입혀주지만요. 그 장르가 아니라, 그 이야기에 맞는 복장이요.
하지만 장르라는 것은 토탈 페키지적 속성이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 장르의 익숙함을 따라 상상하게 되요. 무협지에서 가죽 본디지를 입은 남자를 상상하지 않고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도포와 갓을 입은 사람을 상상하지 않듯이요.
그럼 오크 변호사에서 주인공이 입고 있는 복장은 뭘까요? 풍성한 레이스로 장식된 셔츠에 금, 은으로 화려하게 자수가 새겨지고 마노로 세공된 단추가 달린 프록 코트, 머리에는 귀를 덮을 정도의 풍성한 타이 위그를 장착하고 손에서는 하얀 실크 장갑을 꼈을까요?
아뇨, 저는 좀 더 실용적인 복장이 떠올라요. 물론 최신 트랜드처럼 라인을 살린 스키니한 정장은 아니지만 프록코트가 아닌 연미복. 좀 더 단정한 셔츠. 단추는 수수하고 작은 조개단추. 가발은 커녕 실크햇조차 쓰지 않은 복장이요. 혹은 가쿠란이나 인민복도 가능성이 있겠죠. 어쩌면 기모노일 수도 있고요.
오크 변호사는 독특한 판타지입니다. 이 분위기는 법정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가 얽혀있기 때문이죠. 분리주의자. 아니 독립주의자들. 외견상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종족들과 그 수 만큼, 어쩌면 더 많이 존재할 차별과 편견들. 종족간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법들. 저는 읽으면서 계속해서 경성이 떠올랐어요. 한양도, 서울도 아닌 경성이요. 일종의 다이쇼로망이죠.
하지만 다이쇼 로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면 직접 다이쇼 로망을 배경으로 말했겠죠. 경성을 배경으로 경성제1제국대학을 졸업한 내지인 변호사가 독립운동가들이 주시하는 내지인과 외지인의 혼혈을 변호하는 많은 것들이 교차하는 이야기. 오크 변호사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크를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죠. 그러니 이 옷은 맞지 않을 거에요.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이야기가 있죠. 무슨 뜻일까요? 중요한건 어디에 뿌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심었느냐라는 뜻 아닐까요. 다이쇼로망의 향기가 난다고 해서 성급히 판단하기엔 아직 이야기가 덜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러니 기대할 뿐입니다. 이야기가 끝날때 오크 변호사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