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가르침!? 결국.. 감상

대상작품: 시체 팔이 (작가: 노재욱, 작품정보)
리뷰어: 아나르코, 17년 9월, 조회 30

한때는 자신의 동료였지만, 이제는 유명 대학의 교수가 된 이의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맡게 된 박사는 어떤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전당을 찾아가게 된다. 하얀 소복차림이지만 형형색색의 보석반지와 옥으로 된 귀걸이를 하고 있는 나이 많은 교주가 등장한다. 그녀는 단상 위에 올라선 채 유리관의 뚜껑을 들어올린다. 그 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반듯하게 누워있는 여인이 있다. 교주는 말한다. “여러분, 시체님의 가르침을 들으시오. 일어나시오. 기대하시오. 노래하시오.” 그러면 신도들은 일어나 기도하고, 노래한다. 그리고 시체의 손에 입술을 맞춘다. 그렇다. 누워있는 여인은 비록 아름답게 보일지는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체인 것이다. 결국 그 어떤 의식이라는 것은 그들만의 종교 의식이자, 시체 숭배 의식인 것이다.

시체를 모셔다두고 그것을 숭배한다?? 분명 상식적이지만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종교가 죽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은 이들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에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보통의 종교에서 시체를 모셔다두고 그러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교주라는 인물의 모습에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종교, 뭔가 사이비의 냄새가 풍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체만 모셔다 둔 것뿐이지 뭐 다른 종교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교주라고 보석 따위 멀리하라는 법은 없지 않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런 약간의 반론(?!)은 금방 사라지게 된다.

시체가 생전에 전하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그 가르침이 교주를 비롯한 몇몇 이들의 개인적인 목적에 부합하도록 바뀌어 간다는 사실은 분명 문제가 된다. 그와 동시에 시체의 가르침보다도 시체 그 자체를 숭배하게끔 한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자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이미 그들 스스로가 더 이상의 반론의 여지도 없이 자신들을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기본적으로 사이비종교 집단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기본은 그렇다.

그렇다면 그 기본을 뛰어넘는 더 재미있는 것이 나와야 할 텐데……. 다행스럽게도 역시나 나온다. 기본을 뛰어넘어 흥미롭기까지 한 것은 바로 박사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박사는 학자로서 다양한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면서 각 문화 사이에 우월성은 없으며 모든 문화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충분히 열린, 혹은 깨어있는 사람이려니 했는데 종교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히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특별히 종교에 대해서는 비이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그 어떤 종교 비슷한 것도 없었기에 종교와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는 사실은 학자로서의 그의 면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낮은 수준의 깨달음으로 느껴진다. 뭐 이정도야 어릴 적 좋지 않은 기억들이 쌓여서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오히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종교라는 힘이 없어도 순전히 그의 피와 땀, 혹은 어떤 우연적인 요소들 덕택에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다고 믿으니까. 문제는 이 다음인데, 한밤중에 시체와 대화를 했다는 순간의 기이한 경험을 통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시체님이 자신을 계몽자로 임명하셨으니까, 자신이 이 가련한 신도들을, 이 우매한 인류를 이끌어야 한다고 믿으며, 그 자체를 운명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갑자기말이다. 흠!!

누군가가 종교에 빠지게 되는 종교적 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될 만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빠져드는 것을 보고는 웃음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동정, 혹은 안타까움까지 느껴졌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시 그 자신이 누군가에 의도적으로 이용을 당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또다시 그 스스로가 시체팔이의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으로 그 자체가 우스워 보이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지며, 결국에는 아주 무섭게 다가오게 된다.

<시체 팔이>는 제목 그대로 단순히 시체 팔이나 하는 집단을 그리면서 그와 비슷한 종교의 탈을 뒤집어쓴 집단들을 향해 비판을 하고, 자신의 명확한 신념으로 그런 집단에 맞서는 한때의 박사 같은 용기 있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며 또다른 하나의 유사 집단화 되는 모습을 비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어느 곳을 향하든 비판적인 느낌이 깃들여져 있고, 거기에다가 웃음-그 웃음이 분명 마냥 기뻐서나는 그런 웃음을 아닐 것이다-이나 안타까움, 혹은 공포까지 곁들여져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그 어떤 모습으로 보고 생각하든 그 마지막은 역시 독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커다란 몫을 위해 딱 하나의 길로만 향하지 않고 여러 길을 나눠 놓아두었다는 사실에 더 없이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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