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가 일하게 될 곳이야. 맘에 드나?”
혜성은 최태오 중위와 함께 지휘본부 5층의 복도에 서서 창밖의 선착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토르카 감응관으로 막 임관했기에 관련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지 소속 토르카들의 근황을 공유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나온 길이었다.
“맘에 듭니다.”
달리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선착장은 광활하고 삭막했다. 그곳은 카이퍼 벨트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수 천 개의 인공행성 중 하나인 ‘푸르나’의 북극을 차지하는 K38 기지의 일부로, 포상 휴가를 즐기는 전함과 적재 중인 군수지원함을 포함해 크고 작은 함선 일곱 척이 선착장 가장자리에 띄엄띄엄 도킹해 있었다. 그 외에는 텅 비다시피 한 선착장 중앙에 기지 소유의 토르카들을 격리한 돔이 바다에서 솟아오른 화산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저기에 메리가 있겠군요.”
“맞아.”
다시 보니 아름답기도 한 풍경이었다. 선착장 너머로 끝도 없는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고 그 가운데서 그 우리만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가지. 메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두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 토르카 우리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회의 중에 들었겠지만, 메리가 예민한 상태야. 잘 부탁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복도 끝에 위치한 에어록의 전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토르카 감응관과 수의관의 이름이 적힌 선외활동용 수트가 여러 벌 걸려있었다.
“레이디 퍼스트.”
최 중위가 그렇게 말하며 혜성이 수트 입는 것을 도왔다. 혜성은 곧장 헬멧에서 노래가 나오도록 조작했다. 토르카 메리가 좋아하는 <민들레처럼>이라는 노래였다. 전주부터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노래를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아니, 처음 한두 번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니가 퇴근해서 이 노래를 주구장창 틀어놓은 그날부터 혜성은 이 노래를 싫어하게 됐다.
‘그게 벌써 6년 전인가.’
토르카 감응관으로 갓 임관한 언니는 어느 날 희색이 만면한 채로 퇴근해 이 노래를 틀어놓았다. 혜성은 두어 번 듣고 나서 질색하고 말았다.
“그 우중충한 노래는 뭐야?”
“오늘의 퀴즈! 이 노래의 제목은 뭘까요?”
“야!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 왜 자꾸 트는 건데?”
“자아, 그럼 두 번째 퀴즈입니다! 고유성이 이 노래를 반복 재생하는 이유는?”
뻔했다. 언니가 맡은 토르카와 언니가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드디어 찾은 것이다. 혜성은 되도 않는 퀴즈 놀이 따위 집어치우라고 했다.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느냐며.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 일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반복됐다. 언니가 토르카를 손쉽게 다루기 위해 이어웜을 만들려는 거였다. 하지만 대학입시를 준비 중인 혜성에게 그것은 고문과도 같은 일이었다.
“언니, 세상에는 이어폰이라는 물건이 있거든?”
“알지만, 내 고막이 좀 소중해야지.”
“야, 고유성! 네 고막만 소중하냐?”
혜성이 소리쳤지만 언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대학입학시험이 불과 한 달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혜성은 지구의 바다 풍경을 동경해 해양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태양계 외곽의 이 인공행성에는 그런 전공을 가르치는 대학도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취직이 보장되지 않았다. 혜성은 지구의 대학에 갈 실력도 안 되고 그럴 형편도 못 됐지만 푸르나에 설립된 지구연합우주군 부속 46대학 국방관리과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혜성은 일단 그곳에 들어가 성적을 잘 받은 뒤 장학금을 받아 지구로 유학 갈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지구에서 국방관리업무를 하며 돈을 모은 뒤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말이다.
그건 인공행성 기지촌에서 태어난 운명을 저주하는 똑똑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이 우울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걸어가는 정형화된 길이었다. 혜성은 엄마와 아빠를 앗아간 이 행성과 자기밖에 모르는 언니가 날이 갈수록 싫어졌고 빨리 지구로 날아가 수영장이 아닌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입학시험을 잘 봐야 하는데 언니가 매일 같은 노래를 틀어대니 공부 중에도 노래가 귓가에 아른대서 집중이 되지가 않았다.
혜성은 결국 언니와 싸웠고, 싸움은 고집불통인 언니의 승리로 끝났다. 언니가 혜성이 소리를 지르든 물건을 집어던지든 아랑곳 않고 이 노래를 계속 틀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혜성은 입시를 망쳐 재수를 해야 했는데, 마침 언니가 기지 내의 관사로 옮긴 덕분에 시험을 잘 봐서 46대학 국방관리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 성년이 됐다고 바로 집을 나가버리는 언니가 어디 있담.’
언니가 떠난 뒤부터 혜성은 이 노래를 한 번도 듣지 않았지만 노래는 귓속에 둥지를 튼 벌레처럼 꼬물대고 있었고 온 마음을 다해 잊고 싶었던 그 노래를 마침내 두 귀로 직접 듣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휴우우.”
저도 모르게 내쉰 한숨에 헬멧이 부옇게 흐려졌다.
“긴장되나 보군.”
최 중위의 말에 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토르카 수의관인 그에게 이 노래를 싫어한다고 고백해봤자 돌아올 대답이란 ‘그럼 다른 노래를 찾아보는 게 좋겠군’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혜성은 언니처럼 메리와 자신이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찾는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언니를 찾아 군에 던져줄 생각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가 지겨워지게 될까봐 두려웠다.
이제 최 중위가 수트로 갈아입을 차례였다. 혜성이 그를 돕는 동안 헬멧에서 투쟁과 해방을 울부짖는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들을수록 기운이 빠지고 급기야는 음산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출근 전에 각오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 헤까닥 돌아버리는 게 아닐까. 혜성은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디 불편한가? 심장 박동이 빨라졌는데.”
최 중위의 말에 혜성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남의 심장 박동 같은 거 관찰하지 마시라고요.’
하지만 최 중위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선외활동을 함께 나가는 동료에 대한 의무였으니까. 혜성의 헬멧 스크린에도 최 중위의 바이탈 사인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덕분에 최 중위가 심장 마비라도 일으키면 혜성은 그가 쓰러지기도 전에 그를 업고 의무실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최 중위는 젊고 건강하기에 그럴 일이 일어날 확률은 아주 낮겠지만 말이다. 쓰러질 확률이 높은 것은 미치기 일보직전의 혜성이었다. 혜성은 출근 첫 날부터 상관의 등에 업혀 구조되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심호흡했다. 언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기 전까지는 이 노래를 좋아해야, 아니 최소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