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내미는 안락을 거부하는 인간 감상

대상작품: 귀명실록 – 2. 울림벌레 (작가: OriginCode,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시간 전, 조회 7

줄거리 요약

 

울림벌레는 실체 없이 “감정의 파형”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공포·앙심 같은 극단적 감정에 기생한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살을 파먹는 대신 마음을 비운다는 발상이 공포스러우면서 동시에 시적이다. 장마, 광통교, 혜민서 약재방 등 축축하고 음습한 배경 묘사가 시종일관 일관되게 유지되어 몰입감도 준다.

 

 

근데 리뷰를 쓰다 말고 자꾸 딴 생각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데스티니 2’에도 이것과 상당히 닮은 시즌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또 ‘지만 아는 얘기 하는 리뷰어’다)

거기엔 ‘군체(Hive)’라는 외계 종족이 나온다. 이들은 자신의 몸에 ‘벌레신(Worm God)’을 키우고, 그 벌레에게 끊임없이 공물을 바치며 그 대가로 영생에 가까운 수명을 보장받는다. 벌레는 숙주의 몸에 깃들어 숙주를 서서히 ‘군체’로 만들어가고, 그 관계는 기생이라기보다 거의 신앙에 가깝다.

그리고 이 시리즈엔 그 군체 왕족 중 하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아군 NPC 하나가 자진해서 그 벌레신을 자기 몸에 받아들이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녀는 벌레(와 군체 종족)가 속삭이는 온갖 유혹과 속삭임에 대해 “네놈들이 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며(이전 시리즈 에피소드에서 군체들이 그녀의 친구들을 전멸시켰다), 오직 군체 여왕을 쓰러뜨리는 데 필요한 딱 그만큼의 힘만 취하고 나머지는 전부 뿌리친다. (물론 한 번 몸에 들인 것을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해서, 그 대가는 후속 이야기 내내 그녀를 따라다니지만.)

『울림벌레』를 읽으면서 이 장면이 계속 겹쳐 보였다. 하필 ‘군체’에다가 ‘벌레’라는 존재의 이름부터가 그렇고, 그 벌레가 ‘마음’을 먹어치우고 사람을 그릇으로 만들려 한다는 설정, 그리고 그것이 내미는 것이 협박이 아니라 안락과 위로라는 점까지 구조 자체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현록이 임금의 침전에서 울림벌레와 대치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절실하게 읽혔다. 울림벌레는 그에게 “쉬어라, 보는 것은 곧 상처다”라고 속삭인다. 영안이라는 저주에 평생 시달려온 그에게 그 제안은 사실 구원처럼 들릴 법도 하다. 그런데 현록은 그 안락을 발로 걷어차며 “나는 그대들이 바라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맞선다. 이것은 그 게임 속 NPC가 벌레의 모든 것을 거부하며 오직 필요한 힘만 뽑아 쓰던 그 태도와 본질적으로 같게 보였다. 괴물이 주는 것을 하나도 받지 않으면서, 그 괴물과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힘만 스스로 짜내는 것. 그게 이런 스토리, 이런 장르에서 가장 매력적인 저항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말에서 울림벌레의 절반이 현록의 몸속에 남는다는 설정도, 그 NPC가 벌레를 완전히 떼어내지 못하고 계속 그 대가를 짊어지고 가야 했던 것과 겹친다. 이 장르—군체적인, 몸을 잠식하는 존재와 싸우는 이야기—는 결국 “완전한 승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서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현록이 이겼지만 온전히 이겼다고 할 수는 없는 이 결말이, 나에게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몸에 무언가를 들인 영웅’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야기 구조나 정서를 완전히 베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겹쳐 보이는 걸 보면, 아마 ‘괴물이 내미는 안락을 거부하는 인간’이라는 서사 자체가 어느 문화권에서든 통하는 원형적인 공포이자 카타르시스인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원형을 조선이라는 배경 위에서, 영안이라는 저주와 감정의 결이라는 소재로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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