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자: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의뢰(비평)

대상작품: 고독자 (작가: 뚜앤뽀,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3시간 전, 조회 13

*리뷰 의뢰므로 형식을 달리해서 적습니다.

 

일단 쓰기에 앞서서 5,400매나 되는 본 작품에서 저는 1장, 곧 369매를 읽고 남기는 리뷰임을 밝힙니다.

1장의 내용은 요약하면 매우 단순합니다. 사관학교 생도인 주인공 마리벨이 훈련 받으려고 소집됐고, 함선에 탄 뒤, 자기 전용 기체를 타고 우주로 출격하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1장 1화부터 11화까지, 회차당 30매가 넘는 분량으로 다룹니다.

본래 의뢰는 3장까지 읽고 평가해달라는 것이었으나, 도저히 3장까지 읽을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1장까지 읽게 됐습니다. 3장까지 읽으면 어느 정도 내용도 나오고 얘기할 게 더 많아지겠지만…… 그걸 감내할 만큼 읽기 쾌적한지를 따져보면 역시 무리였습니다.

본 작품 도입부, 서장 역할을 하는 1장에만 한해서(그러니까 2장부터는 이 문제점이 적용되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문제점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목표가 부재해 지나치게 수동적인 주인공

2. 주어진 서사 목표와 무관한 세부 전개(=지지부진한 전개)

3. 매 순간마다 이뤄지는 과잉서술, 그로 인해 분산된 비중

4. 회차당 많은 분량(30매 이상)

5. 그 외 각종 비문, 오타, 가독성을 저해하는 문장

5번을 제외한 1번부터 4번까지의 문제는 전부 하나의 원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건 바로 선택과 집중이 소설 전반에 걸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부제로 붙인 정신과 시간의 방은 말 그대로 본 작품의 1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 작품의 1장은 하루, 심지어 한나절도 안 되는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다룬 내용은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아침 점호를 하고 배에 올라타 훈련 받으러 기체에 탑승한 것이 끝입니다. 그 내용을 11화 내내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트루먼쇼를 1배속으로 시청하는 느낌이죠. 인간극장 다큐 3일… 아니 다큐 11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순간순간 장면에 집중한다면 그럭저럭 넘길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전체를 조망하는 순간 “그래서 남는 게 뭐지?”라는 의문 앞에 이 작품의 1장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의 궁극적인, 혹은 거대한 목표가 제시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만 하는 1장? 소설 초점 자체가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잡힌 채 모든 걸 짚고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훈련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초장에 주어졌음에도 1장이 끝나는 내내 본격적인 훈련은 시작도 못한 지지부진한 전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다 짚고 넘어갔기 때문이죠.

매 순간마다 설명하지 않고선 못 배기나, 정작 필요한 설명(국가 이름, MD의 정체 등등)은 너무 늦게 나오거나 나오지 않죠. 이후 전개에 필요한 내용이 1장 어딘가에 있더라도 독자가 그것을 중요하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설명과 비중이 거의 동등하게 취급되고 흘러가니까요.

더군다나 회차당 분량이 30매를 넘어가면서 회차 단위의 분위기가 일관되지 못하는 점도, 지나치게 많은 서술과 긴 호흡의 회차 분량, 그에 반해 지지부진한 전개까지 겹치니 웬만한 소설보다 독해 피로도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읽은 건 많은데, 남는 건 없으니까요. 덧붙여 오타와 비문, 가독성을 저해하는 문장들은 덤이고요.

 

선택과 집중을 실패하는 원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개는 뭐가 중요한지 몰라서(=다 중요하다고 느껴서)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느라 선택과 집중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맞는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항에 대고 1번부터 5번까지 다 마킹해서 제출한 꼴이죠. 결과는 정답을 포괄하고 있어도 땡입니다.

선택과 집중, 곧 선별의 문제는 지면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면의 한계는 단순히 주어진 분량이 많고 적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소설’이란 지면이 가지는 한계, 곧 독자가 글을 읽고 이해하고 전체를 조망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한계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서, 독자는 다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 알고 싶어 할지라도, 그걸 곧이 곧대로 알려주면 지루해합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소설에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존재하고, 덜 중요한 것 중에는 안 다루는 게 차라리 나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에서 작가는 자신이 작품에 쏟는 애정과 별개로 과감하게 잘라낼 결단이 요구됩니다.

특히나 본 작품처럼 총체적 과잉에 빠진 상태라면 더더욱 많이 잘라내야겠죠.

그렇다면 핵심은 잘라내느냐, 아니냐가 아니죠. 어디까지 잘라내고 어디까지 남겨두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따라서 중요한 건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이 기준은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단순히 독자들의 반응을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일단 작품을 다 읽고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를 선별해줄 독자가 있어야겠네요. 근데 거기까지 가면 독자가 아니라 편집자에 가깝겠죠. 그러니 사실 독자에게 기대할 순 없습니다. 독자는 어디까지나 반응 지표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표본이 적으면 사실 지표로서 의미도 거의 없고요.

그렇다면 동료 작가는 어떨까요? 실력 있는 동료 작가라면 분명히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가조차 남의 작품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의도를 살리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보긴 어렵겠죠. 결과물에 맞춰서 재단할 뿐이니까요. 그마저 본 작품의 1장처럼 총체적 과잉 상태에 빠진 글은 ‘어떤 기준’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동료 작가의 조언 역시 ‘참고 사항’은 될지언정 유효한 답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AI라도 의지해야 할까요? 하하 농담입니다. 진심으로 고려하진 마세요. 차라리 그럴 바에 발품이라도 팔아서 작가의 조언을 듣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결국 그 답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기준을 세우고, 그 결과물에 대한 반응을 확인해서 천천히 고쳐나가는 식이어야겠죠. 굉장히 원론적이고 왕도적인 방법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작품 창작이 가능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그에 맞춰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바꿔말해 명확하지 않은 목적, 애매모호하거나 불분명한 목적은 선택과 집중을 함에 있어서 혼선을 빚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보죠. 1장의 목표를 두 가지로 잡아봅시다. 첫째는 세계관의 초입, 그러니까 알파런이라는 나라, 그리고 사관학교라는 배경을 보여주고 그 안에 속한 주인공의 목적을 밝히는 도입부로서의 목적을 잡고, 둘째는 본격적인 숙영 훈련 에피소드에 들어가기 위한 도입부 에피소드로서의 목적입니다.

이러한 목표 설정은 임의적인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목표(목적)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러면 1장은 다시 말해 독자가 세계와 주인공에게 친숙해질 겸 앞으로의 에피소드를 위한 몰입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단 역시 빠르게 정할 수 있습니다. 설명이 많이 들어가야 하니 사관학교라는 배경의 특수성을 살려서 세계관 설명은 함장/사령관 연설로 포괄적으로 다룬 뒤, 함대에 들어가면 ‘숙영 훈련을 위한 기초 교육’으로서 이론 강의 파트를 집어넣으면 될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반응을 착실하게 다루면 독자는 세계와 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겠죠. 겸사겸사 비교군으로서 다른 주조연들도 다루면 좋고요.

목표도 수단도 정해졌습니다. 이 관점에서 1장을 봅시다.

세계를 설명하지 않거나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준비가 아닌(=교육과 연설 장면이 아닌) 모든 장면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격납고로 가는 동안 벌어지는 우당탕탕 방해쇼나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가는 탈의실의 소동 역시 불필요하며, 1화는 통째로 사라져도 문제가 없죠. 아침 점호나 이동하는 장면 역시 그만큼의 분량을 할애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 외 불필요한 주목들을 쳐내면 사실 11화는 거의 3-4화 안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더 극단적으로는 2-3화 안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본 작품의 1장이 목적과 관계없는 불필요하고 부차적인 전개와 서술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꿔말하면 본 1장의 전개는 애당초 본 작품의 ‘n장’이라는 단위로 할애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뜻도 되고요.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을 충족하지 않는 모든 장면은 목적지를 잇는 가교입니다. 쉽게 말해서 빠르게 넘어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진짜 중요한 장면에 분량을 할애해야 거기에 비중이 생기고, 무게가 실리죠. ‘다 중요해서 다 서술한’ 작품은 역설적으로 모든 게 중요하지 않은 작품이 됩니다. 모든 게 중요하지 않으면, 독자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독자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걸 읽기 위해’ 읽지 않습니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빠르게 빠져나감으로써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는 것. 그게 선택과 집중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러니 ‘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건 있습니다. 그걸 구분하는 건 작가가 설정한 목표(목적)입니다.

목표는 되도록 한두 개를 설정하시면 좋습니다. 두 개 이상은 서로 상충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를 달성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하나도 충족되는, 조화로운 관계여야 합니다. 그리고 각 목표는 하나 이하의 수단만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한 에피소드에 두 개 이상의 목표가 있다면, 되도록 수단은 ‘일타쌍피’를 노리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각 목표에 각 수단이 난립하게 되면 당연히 비중이 분산되고 그에 따른 ‘선택과 집중’은 자연히 흐려지게 됩니다.

때로는 거대한 목표에 거대한 수단이 동원돼, 수단 자체가 너무 모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다시 수단을 그 자체로 목표 삼아서 그를 위한 수단을 설정해야 합니다. 처절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해내야 한다는 목표를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설정했다면, 그 전쟁을 다루는 걸 목표로서 세부적인 전투 양상을 다시 수단으로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본 작품의 1장이 너무 미시적인 것에 천착해서 지지부진해졌듯, 이 역시 에피소드의 볼륨과 스케일, 작품 전체 호흡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이건 1장만 읽은 제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말씀드릴 수 없고, 작가님께서 스스로 판단하시고 돌아보셔야 할 지점입니다.

(그 외로 선택과 집중만큼이나 ‘순서’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순서의 문제 역시 선택과 집중으로 충분히 응용하여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 작품은 연재물입니다. 회차 단위로 목표를 설정하기 쉽고, 그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쉽습니다. 그런데 회차의 단위 분량이 늘어나면 ‘선택’은 하더라도 ‘집중’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분량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전개가 늘어지더라도 정보를 더 많이 풀거나’ vs ‘필요 이상의 전개를 풀거나’라는 지옥의 이지선다로 빠지게 되니까요. 겸사겸사 독자 집중력으로도 30매 이상은 피로를 유발하기 쉽습니다.

15매~20매 안팎으로 무조건 끊는다고 생각하세요. 마지노선은 25매로 생각하시면 됩니다.(그렇다고 26매가 되면 칼 같이 25/1매나 13/13매로 끊으란 얘기는 아닙니다)

대략 3천자~4천자 사이의 분량이 회차 단위의 ‘선택과 집중’을 살리기 편하고, 독자로서도 적절히 끊고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그 이상은 너무 늘어지고, 그 이하는 너무 감질맛이 나거나 집중되지 않습니다.

이를 실천하실 때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분량이 리미트에 걸리네?’라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서 거기서 끊고 서술을 쳐내든, 일단 목표 달성부터 하고 다이어트를 하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체적인 과잉과 과초점은 목적과 수단 외의 것을 쳐내는 식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개별 서술의 과잉도 비슷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것도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다루려고 해서 생기는 문제인 만큼, “목적에 맞는 서술”과 “목적 외의 욕심을 낸 서술”을 분간하고, 후자만 먼저 최소치로 쳐내는 걸 추천합니다.

“적절한 서술”이란 건 작품의 호흡, 작가의 개성, 내용의 문제도 복잡하게 얽힌 문제긴 하지만, 욕심만 내려놓으면 대부분은 해결됩니다.

요컨대 “이건 꼭 알아야 한다”와 “이건 알아두면 좋겠다”를 분간하는 것도 진행돼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전부 다” “동등하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필요하게끔’ 인식시키는 것이고, ‘중요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거듭 말했듯, 동등한 비중은 역설적으로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중요하다고 강조할 수 있는 건 매 순간 한정돼 있습니다. 거기에 무엇을 올리실지는 작가님께서 스스로 판단하시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올린 다음엔? 올라가지 못한 모든 것들을 치워버리셔야죠. 혹은 중요한 것을 돋보이게끔 배치하거나.

 

본 리뷰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작가님께선 작품을 위해서라도 내적 기준치를 확립하셔야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스스로 답을 내리시고 줄을 세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위부터는 작품에서 퇴출시킬 각오도 하셔야 합니다. 편애라는 이름의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편애가 정말로 잘 이뤄진다면, 역설적으로 그 편애로 인한 균형이 독자로 하여금 ‘덜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게 할 것입니다. 세계에 빠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세계에 빠지기도 전에 보여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 모든 조언을 지금 당장 적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적용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부디 끝까지 다 쓰시고, 완결이란 방점을 찍으신 다음에 천천히 연구하시며 퇴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는 편이 성장에도 더 도움이 됩니다.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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