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우주는 무엇으로 가득한가 감상

대상작품: 링구아 코스미카 (작가: 조나단, 작품정보)
리뷰어: 녹음익, 2시간 전, 조회 10

* 스포일러 주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는가?]

링구아 코스미카라는 타자(Other)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떠내려왔으니 이를 해석해보자. 이 이야기는 일차적으로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중심에 둔 우리의 오래된 환상을 충족시켜준다.

인간중심주의는 외계인을 기술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 주요하게는 외양, 정신상태, 생화학적 구조, 진화의 역사 등이 인간의 것과 유사할 것이라고 보는 심리적 습관 전반을 지칭한다. 탐사 결과의 해석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외계인 탐사에서는 기본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심리로 간주된다. ‘거울 보기(mirror view)’라는 유명한 표현은, 우리가 하는 작업이 거울에 비친 또 다른 우리 자신을 찾는 것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문구이다.

한편으로, 과학자들은 외계인 탐사에서 인간중심주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핵심적인 이유는 인간과 완전히, 소통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다른 존재를 중심에 둔다면 외계인 탐사라는 활동 자체를 어디서 시작할지 알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어떠한 외계 존재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 우리 자신 외에는 참고할 수 있는 마땅한 모델이 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위험성을 가졌기에, 외계인 탐사와 관련된 문헌에서는 하다못해 인간중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감안해야겠지만과 같은 형식으로라도 인간중심주의가 한번씩은 언급되곤 한다. 인간중심주의라는 용어를 정의하며 매번 주요한 키워드로 다뤄야 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외계인을 의인화하려는 강한 경향성이 있다. 사실 우리는 외계인 말고도 많은 사물을 의인화하며 살기는 한다. 그러나 외계인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속성을 부여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대상을 의인화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대상의 의인화와는 차별성이 있다. 그렇기에 외계인에 대한 의인화는 종종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주 저편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만약 있다면 그게 대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정보도 단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 대상이 최소한 말은 통하는 존재이기를, 가장 이상적이게는 다른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논지이다.

 

링구아 코스미카라는 이야기는 가장 경쾌한 방식으로 우리들이 이러한 불안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이야기의 말미에는 한 가지 반전이 있다. 왜 그 반전이 성립할 수 있는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정신상태가 기본적으로 인류의 것과 구분 불가능할 정도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닮아 있다는 것은 보통 닮아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외계인들은 통상 외계인을 의인화한다고 할 때 흔히 제시되는 침략자(화성인우주전쟁), 메시아(오버로드유년기의 끝), 착하기는 한데 무슨 생각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 애(E.T.-E.T.)만큼의 타자성조차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샅샅이 훑어봐도(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러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사고과정에서 티끌만큼의 위화감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그냥 사실상 우리다. 좀더 정확히는 작가가 상상하는 약간 미화된 우리다. 이야기의 초입에서 우리’(반전이 드러나기 전이므로)기적적인 확률을 뚫고 외계인의 기술징후(technosignature)를 확보한다. 이 확보과정의 서술에서 환희보다 공포가 먼저 제시되는 것은(‘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앞서 말한 불확실성에 기인한 불안이 반영된 묘사일 것이다.

그 후로 이어지는 기술들은 오로지 선물상자를 풀어헤치며 안도감이라는 선물을 확인하는 과정의 추체험이다. 미적 감각이나 생긴 것 따위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포착한 외계인들의 정신상태가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지, 더 나아가서는 얼마나 말이 통할 것 같은지, 더더 나아가서는 전쟁터가 아니라 간담회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높은 애들인지에 대한 긍정적 방향의 확언만이, 경사스러운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들의 모성을 특정함으로써, 차갑고 공허했던 우주에는 마침내 이름이 좋은 애들이라고 저장된 단축번호 1번이 찍히게 된다. 이야기의 낭만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는 바로 이러한 발견 과정을 통해 누적된다. 더군다나 우주선을 날려보낸 종족들이 절멸(아마도?)했기 때문에 앞으로 치고 박고 틀어질 걱정도 없고, 그들의 다른 실체가 드러날 염려도 없다. 그들의 이상적인 이미지는 안타까움을 꼬리표로 단 채 영구적으로 박제될 것이다.

알고 보니 죽은 애들이 우리 인류여서 좀 슬프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 않는가? 식민화와 침략전쟁은 외계인 의인화의 단골 형식일 정도로 인류의 뿌리깊은 행동양식이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죽은 인류는 (혹은 죽은 인류와는) 싸울 수 없으므로 우리와 외계종족은 어떠한 충돌도 예정되지 않은 최고등급의 친구로만 영원히 기록 속에 보존될 것이다. 게다가 이 글을 읽는 나는 살아 있고, 이해 가능한 우주라는 낭만은 이야기에서 빠져 나온 후로도 계속 남아 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일차적으로는 외계인이 우리의, 혹은 우리가 외계인의 메시지를 탐지한다는 기본 골격에서 도출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시나리오들의 복합체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 겹의 층위를 더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만약 이들의 정신상태가 인류와 사실상 동일하다면 우리는 필리프 브르통의 인간은 설득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확신을 지닌 존재라는 명제를 아마 이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방통일 100주년이라는 경사스러운 시기라지만, 독자는 연방의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다. 거기에 독자가 내내 읽었던 것은 형식상 프로파간다이다. 골든 레코드가 일종의 광고판인 것처럼, 우리가 읽은 연설이 정보적으로 정제된 선전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왜 외계 상층부는 완벽히 해독되지 못한 데이터들의 존재가 대중 사이에서 음모론을 자라나게 할 위험성이 있음에도 이 시점에 그 정보들을 공개했던 것일까? 왜 외계인들은 골든 레코드가 향하는 방향을 향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정말로 외계인들은 골든 레코드에 아무것도 덧대지않았을까?

외계에서 온 메시지를 끝도 없이 낙관적으로 선해하는 외계인들의 태도와 그 해석의 내용은, 이 이야기의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심축이다. 그러나 기술문명이 이들보다 덜 발달한 상태인 현재의 우리도 골든 레코드가 우리의 추잡스럽고 흉흉한 측면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것을 저들이 모를까? 역설적이게도 외계인이 인간과 한없이 가까워질수록, 그들과 우리 사이엔 인간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간극이 단단히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이 이야기는 은근한 태도로 말하고 있다. 이 밝은 이야기의 뒤편에는 풍자의 씁쓸한 향미가 묻어 있는 것이다.

 

인류는 어쨌든 외계인 탐사를 지속할 것이다. 전파탐지도 계속하고 태양계 내의 기술징후도 탐지할 것이다. 달 궤도선으로 얻은 고해상도 달 표면 이미지에서 외계 문명의 흔적을 탐색하거나 지구생물의 게놈에서 외계 문명의 메시지를 찾는 방식(genomic SETI)은 마이너하긴 하지만 주류 과학계에서도 언급되는 방식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외계인의 흔적을 좇고 있다. 우리 개개인의 힘으론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과의 첫 접촉(first contact)이 그들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 주기를 바랄까? 그들이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4@#*$하고 #$^*&하는 괴물이기를 바랄까, 아니면 테이블에 둘러앉아 링구아 코스미카를 사용해 같은 이상을 논의할 수 있는 친구이기를 바랄까?

조나단 작가의 링구아 코스미카는 다음의 서글픈 통찰을 놓치지는 않는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레가요프인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 물어보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그 목적을 알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앞선 질문에 마주한 우리의 마음속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하나의 이상적인 답을 제시해준다. ‘우리는 그들로 인해 알게 되었습니다. … 저 수많은 별들 너머 어딘가에 우리와는 다르지만 / 함께 별을 꿈꾸는 존재가 있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외계인과 실제로 마주하기 전까지, 외계인에 대해 상상하는 일은 일정 부분 우리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링구아 코스미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정하지만 서글픈 명제들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불투명한 마음(opacity of other minds)을 불안해한다. ‘우리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모든 타자는 내가 될 수 없으며, 그저 나의 해석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온전한 이해에 대한 희망에 가득 찬 당부를 남긴다.

당신의 여행을 계속하기를…… 부디 멈추지 말아요 regay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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