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의 중심에서 종적 펑크를 외치다. 감상

대상작품: 금붕어 신 (작가: 박주하, 작품정보)
리뷰어: 글씀이, 2시간 전, 조회 10

금붕어 신은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약탈자로 사는 주인공이 말하는 금붕어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말하는 금붕어 자체가 세계관 상 특이하지 않지만, 먹히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고차원적인 말을 걸어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이 작품은 사이버펑크 중에서 펑크 특유의 반항적이고 무질서, 무절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동영상을 서술하며 납땜 기술을 언급하여 실용적 기술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면을 비춘다. 동시에 금붕어 믹서기로 폭력성을, 금붕어용 수조식 식기세척기로 기이한 기술을, 금붕어 포르노로 극단적이고 무절제한 성을 비춘다. 그렇기에 단순한 근미래 도시가 아닌 사이버’ 펑크’로서 기이하게 변화한 일상을 비춘다.

이야기의 동력은 금붕어이다. 이야기의 발단만이 아니라 욕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도 변화를 바라는 것도 전부 금붕어다. 주인공은 약탈자이지만 지나치게 수동적이며 금붕어는 어항 안에 있지만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만들어진 지성이 태어난 지성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특정 가게를 들어가게 하고,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더 나아가 숭배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흥미로운 점은 금붕어의 목표가 어권(魚權)을 보장하는 시위가 아니라 종적 혼합이라는 점이다. 기계와 인간이 어우러질 수 있을까? 이는 사이버펑크 및 고도의 인공지능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흔히 나오는 존재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금붕어와 조화롭고 동등하게 지내는 편이 더 빠를 거라 생각한다. 물론, 금붕어와 인간 사이에서 2세가 나오고 그 2세가 번식이 가능한 존재라면 말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권, 인종의 벽을 넘을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모두 인간이라는 종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의 2세 3세는 어딘가로 혼합될지언정 인간이라는 틀과 정체성을 벗어나지도 고립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기계와 금붕어는 다르다. 같은 지성, 감정,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결국엔 섞일 수 없다. 그 사이의 2세 3세가 느끼는 정체성 혼란이 사회문제가 되고 주류가 될 기회도 없다. 물론 기계와 금붕어가 인간과 2세, 3세를 가질 수 없다는 전제다. 그렇기에 금붕어 신에서 나오는 금붕어는 꽤 흥미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인간금붕어는 두 사회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둘을 잇는 매개체가 되거나 혹은 긴 시간이 흘려 더 이상 조상의 종이 중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금붕어의 인간수정 계획은 괴상하고 역겹기도 하지만 기존 질서를 확실하게 파고드는,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더욱, 캐릭터들 간의 대비로 ‘금붕어’의 강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종적 혼합을 시도하는 펑크적 금붕어와 마약에 찌든 남자, 누군가가 이끌어 주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주인공, 그리고 감정이나 의지가 없다 묘사되는 섹스돌 J까지,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남자는 섹스의 과정만을 원한다. 금붕어는 그 섹스의 결과인 정액만을 원한다. 금붕어가 없으면 나가지 못하는 주인공과 주인공 없이는 어항에 갇힌 신세인 금붕어, 소비재인 섹스돌과 소비재인 금붕어, 금붕어의 소비자인 남자와 금붕어의 숭배자인 주인공이 서로 연쇄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결국 금붕어 신은 인간과 금붕어의 이야기라기보다 대조 대비 사이 경계,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이야기이다. 인간과 비인간, 소비자와 소비재, 목적의 지향과 과정의 탐닉 사이의 경계를 이리저리 교차시킨다. 이 작품의 매력은 정돈되지 않은 미래의 묘사, 그리고 여러 경계의 충돌과 같은 혼돈에 있다. 기술의 폭주로 일상은 폭력에 노출된다. 금붕어의 본질은 중요하지 않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칼과 총에 상처 입는다. 그 사이에서 주인공이 바치는 심장은 경계를 몸으로 밀어가는 금붕어를 위한- 금붕어 신에 대한 숭배가 된다. 그야말로 사이버펑크스러운 구현이다. 기술에만 주목한 것이 아닌 그로 인해 겪을 혼란을 충실하게 구현한(사실 너무 충실해서 잠깐 힘들었던) 작품이다.

위에서는 금붕어를 종적인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선지자이자 혁명가로 상정하고 썼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도중, 그리고 마지막에 묘사된 어항과 작품 초반에 언급된 금붕어의 표어 때문에 두려운 상상이 생각났다. “밥시간이다!”, “제 내장은 제거하고 드시면 더 맛있어요!” 따위의 표어를 말하는 연구가 만일 성공했다면? 그래서 마치 섹스돌 J보다 더 나은, 그러니까 “그거야! 그래 그-”같은 말보다 더 고차원적인 말을 하도록 했다면? 다른 말로, 금붕어의 연구가 성공하여 식용으로서는 실패했지만 ‘금붕어 포르노’로서는 성공했다면?

변태 중독자가 말한다. 자신의 쾌락을 망쳤다고, 왜 말을 안 하냐고. 우리의 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게 맞을까? 그 신은 조금 더 고차원적이고 변태적인 J와 다를 바가 없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은 금붕어 신에 대한 모욕이고 불확실한 근거의 모호한 두려움이다. 분명 그 남자는 ‘식용 금붕어’라고 구매 품목을 이야기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인간 흉내를 내는 인공지능이 나타난 지금 나는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더 알 길은 없다. 우리의 신은 다른 어항으로 떠나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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