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공모(비평)

대상작품: 맞은편에서 (작가: 권선율, 작품정보)
리뷰어: K Rimmer, 10시간 전, 조회 21

*이 리뷰는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읽을 때, 눈을 의심했다. 읽다가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앞 문단에서 멀쩡하게 살아있던 여자가 실은 1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가독성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서술 구조 때문이다. 작가는 리뷰 공모를 올리면서 작품 하단에 퇴고하면서 수정될 수 있습니다라는 단서를 붙여놓았다. 퇴고까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가 보다. 과연 오탈자 몇 개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소설은 구조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수작이다.

 

소설 속 소설과 현실의 교차 구조

이 작품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스터리스크(*)로 구분되어 있는데, 1,3,5는 소설 속 재현이 쓴 소설이고, 2,4,6정아의 시점에서 기술된 현실이 교차한다. 어떻게 보면 액자식 구성이라 볼 수 있겠지만, 교차되면서 내용이 어긋나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게 맞는 것인지 알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재현과 정아, 그리고 소윤은 동갑내기다. 정아와 소윤은 같은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동기이고, 재현과는 소윤의 서점에서 진행한 신인작가의 북토크에서 만나 동갑인 걸 알고 친해진다. 그러나, 재현의 소설에선 소윤과 재현은 같은 대학에서 영화관련 교양수업의 조별 과제를 같이하면서 알게 된 것으로 나온다. 소윤의 어머니는 췌장암을 앓다가 소윤이 대학 진학한 뒤 사망했지만, 재현의 소설에서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독자로 하여금, 재현의 입장에서 기술되는 1인칭 시점의 내용이 소설 속의 소설임과, 소설 속 현실은 정아의 관점에서 기술되는 부분임을 구별하게 하는 의도적 장치다. 2장 후반부에 구조적 오기가 있는데, “소윤은 어리둥절해졌다.”라는 문장의 주어는 정아로 바뀌어야 한다. 단순 타이핑 오기가 아니라, 교차 구조의 시점 문제이므로 이는 중대한 오류다.

 

비대칭으로 구성된 맞은편의 의미

첫 부분에서 소윤은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던 재현의 손목을 잡는다. 손목을 잡는다는 것은 손을 맞잡는 것과는 달리, 비대칭적이다. 일방이 손을 뻗어 잡고, 다른 한 쪽은 잡히는 관계다. 이것은 후반부에서 정아가 소윤의 오주기날 추모공원에 들렀다가 내려오면서 맞은편 계단에서 올라오는 재현을 발견하고 손목을 잡았다가 놓는 것과 대칭되는 장면인데, 손을 맞잡는 것은 재현의 소설 속에서 해변가에서 소윤과 맞잡은 것이 유일한 장면이다. 재현의 상상 속에서 그려진 소설적 장면이기 때문에, 이것은 온전히 이쪽 편에서 대칭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소윤이 서점으로 진입한 자동차 사고로 죽기 전, 재현과 서로 사랑했으나 소윤의 거절로 맺어지지 못한 사이였다는 것, 정아는 처음부터 재현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재현은 소윤이 죽고 난 후, 정아와 사귀던 1년 동안 소윤을 내내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삼각관계의 비대칭도 등장한다. 재현이 어느 새벽 정아가 잠들어 있을 때, “비가 오나 봐.”라고 말했는데, 이젠 정말 다 괜찮아졌을지도 모른다고 정아가 생각하던 시기였다. 재현의 그 말에 잠이 깬 정아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정아는 어렵게 가진 아이의 심장이 멈췄다는 말을 듣고도 분홍색 배지를 떼지 않은 채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는다. 소윤의 추모공원으로 가던 지하철에서 만난 맞은편 여자, 불행한 줄 알았던 그녀는 임신 중으로 행복했고, 정아와 같은 배지를 달고 있었다. 정아의 상실을 맞은편에서 비대칭으로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재현이 정아의 임산부 배지를 보고 아이를 가졌나 보네라고 묻자, 정아는 고개를 숙이고 애써 미소만 짓고 정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은 기쁜 소식으로 읽고, 한 사람은 죽은 아이를 품은 채 침묵한다. 같은 배지를 사이에 두고 정반대의 진실이 마주 본다. 재현의 소설 속에서 소윤과 함께 발견한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소윤이 묻는다. 엄마를 잃어버렸니? 이름이 뭐야? 아이는 정아라고 답했다. 아이 생각엔 소윤이 자기 엄마의 이름을 묻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의 이름을 답했던 것이고 소윤은 아이의 이름을 물은 것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의 비대칭이다. 이러한 비대칭들은 90매짜리 단편소설 안에서 수없이 변주된다. 비대칭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맞은편에서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오는 것이다.

 

 

기억과 감정의 비대칭으로 현실이 재구성되기도 한다

정아는 소윤과 대학 동기이지만, 처음 만나는 재현이란 남자에게, 자신의 꿈이 서점을 차리는 것이었다는 걸 말하는 걸 보고 감정적으로 좌절한다. 소윤이 죽기 1년 전에, 정아는 어느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지하철을 타고 소윤의 서점으로 향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소윤이 재현을 사랑하고 있고, 재현도 소윤을 사랑하고 있음을. 빗길에 넘어져 무릎이 깨지지만 정아는 그 깨달음이 더 아팠다. 서점에 점점 발 길이 뜸해지고 1년 뒤 소윤은 차량 돌진으로 사망한다. 소윤이 죽고 난 뒤, 정아는 1년 간 재현과 사귀지만, 재현은 느닷없이 길게 울곤 했다. 그게 소윤 때문인 것을 알고 정아는 자신이 상처받으리라는 두려움으로 재현과 헤어진다. 정아는 해변가에서 찍힌 소윤과 재현의 사진을 보며 의아해한다. 나는 그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는데, 해변에 같이 간 기억도 없고. 시기적으로 이 사진을 찍어준 것은 자신이었을텐데, 왜 기억에 없지? 사진은 실재하므로 바다행도 실재했다. 그리고 재현은 그 실제를 소설 속에서 허구를 섞어서 썼을 것이다. 정아의 기억은 없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정아는 자신이 그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을까? 재현의 소설 속 장면으로 보면 재현과 소윤은 단 둘이 바다를 보러 갔었고, 거기서 만난 아이의 어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고, 그 여자의 이름이 정아였다. 사진을 해명하려 끌어온 그 이름조차 허구에서 온 것이다. 아마도 소윤이 생전에 그 사진을 정아에게 건네주며 농담했을지 모른다. ‘정아네가 찍어준 사진이라고. 장난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완전 거짓말은 아닌 셈이다. 동명이인의 정아가 찍어준 사진이니까.

 

정아는 지하철에서 아델의 ‘Someone like you’가 나오자 신경이 쓰이지만 옆에 앉은 재현은 그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린다. 이 노래는 가수 아델이 실제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애인을 그리워하며 당신 닮은 남자를 꼭 만날 거라며 애절한 마음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재현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책을 썼고 소윤의 무덤에 두고 왔다면서 네가 올 줄은 몰랐어.”라고 말하고 인사 없이 지하철을 내린다. 재현이란 남자는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바로는 매우 부끄럼많고 소극적이며, 소윤에 대한 마음을 다 비우지 못한 남자다. 그는 정아와 사귀는 동안에도 소윤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정아는 소윤의 대체가 맞았던 것이다. 대체물이었던 정아에게 버림받은 재현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소윤의 추모공원에서 재회한 후에도 별다른 미련없이 떠나버린다. 정아는 처음부터 재현을 사랑했다. 소윤과 재현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고서 상처받고 물러났지만, 소윤이 죽고 재현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잠시 그 옆자리를 지켰던 것뿐이었다. 정아는 재현을 사랑했지만, 재현은 정아를 사랑하지 않았다.

 

정아는 그 해변가 사진에 대해 재현에게 물어볼 걸 하면서 가방 속에 사진을 찾았지만 사진은 없었다. 홀로 남아 지하철에서 깜빡 잠이 들고 꿈을 꾼다. 자신이 해변가에서 소윤과 재현의 사진을 찍어주는 꿈을. 실제로는 해변가에 간 적도, 사진을 찍어준 적도 없지만 꿈 속에서 기억이 재구성되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죽은 소윤이 했던 동명이인의 농담이 살아 있는 정아의 기억을 뒤흔들고, 정아의 꿈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재구성된다. 살아있는 자의 기억이란 대체로 정확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르게 재구성되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맞은편에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재현과 정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교차로 보여준다. 독자로서는 정아의 관점이 현실이고, 재현의 관점은 소설적 허구임을 인지하겠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 정아의 꿈에서 기억의 재구성되는 것을 보면서 기억에 기반한 현실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실 역시 한정된 비대칭 정보 속에서 의식적으로 재구성된 기억일 뿐이므로 소설이 상상으로 빚어진 허구인 것과 같이 현실의 기억 역시 실체적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 맞은편을 보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바라보는 자의 시각, 감정, 기억은 절대로 볼 수 없다. 근사값을 유추하고 상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존재론적으로 갖는 한계다.

 

소윤이 농담으로 동명이인 정아(아이의 엄마)’가 찍어준 사진이라 말했을지 몰라도 정아는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의심하다가 지하철에서 깜빡 잠든 새 꾼 꿈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해내고 결국 그 해변에 같이 갔었노라 스스로 믿을지 모른다. 정아는 그 사진을 누가 찍어주었는지 끝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진실은 소설을 읽는 독자만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과연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난해한 이 질문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독자는 소설을 쓴 작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나? 아니 소설이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맞은편에서 보는 한 그건 원래부터 있을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우리는 늘 오해하고, 오독하고, 유추할 뿐이다.

 

맞은편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몸부림치다 곤하게 잠들어 꿈을 꾸고 그리하여 재구성된 이해가 맞은편에 도착하여 스쳐 닿았기를 그저 소망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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